2015 가을 자유인문캠프 공개강연 ‘사회를 바꾸려면’

 

자유인문캠프는 총 2차례 ‘사회를 바꾸려면’이라는 주제로 공개강연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올 가을, 우리는 다시 동일한 주제로 공개강연을 기획했습니다. 작년 세월호 참사와 올해 메르스 사태 이후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였고, 이념 논쟁이 부각되면서 실질적인 삶에 대한 논의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습니다.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많은 청년들은 지옥 같은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합니다. 하지만 삶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라는 말이 일상처럼 번진 사회에서 뭔가 생산적인 논의가 나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여전히 구조는 바뀔 기미조차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고한 구조 속에서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질문을 던지고 불편한 진실을 감내할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자유인문캠프는 우리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무엇을 알아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일시|2015년 11월 23일(월)/ 11월 25일(수) /11월 27일(금) 저녁 7시
장소|중앙대학교 R&D센터(102동)
문의|010-8445-5410 / @re_univ / reuniv10@gmail.com
주최|자유인문캠프(freecamp.kr)
수강료|무료

11/23(월) 유신시대로의 회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11/25(수)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 어디 간 거니?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11/27(금) 세대론의 시좌 : 세대담론은 투쟁하는 주체의 담론인가 (서동진 계원예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본 행사는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의 예산자치제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1강 “유신시대로의 회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11월 23일(월) 저녁 7시 중앙대학교 R&D센터(102동) 205호 강의실

 

지금 정부에 의해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강행되고 있다. 보수층에서도 적지 않은 반발이 나올 정도의 무리수를 정부가 두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물론 대통령의 ‘효심’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국정화가 유신시대를 반복하는 것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을 대통령 개인의 인격을 떠나 한국 사회의 통치성과 관련되는 문제로 보는 경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역행’과 같은 말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태는 아주 새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에 1974년에 이루어진 국사교과서 국정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우선 짚어보고, 그것과의 대비를 통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태가 어떤 것인지 함께 생각해본다.

 

강연 영상 보기 유신시대로의 회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강 “줄어드는 청년 일자리, 어디 간 거니?”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11월 25일(수) 저녁 7시 중앙대학교 R&D센터(102동) 805호 강의실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고 있다. ‘헬조선’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도 일자리 감소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은 ‘노오오오오력’. 하지만 일자리는 줄어만 가고,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는 ‘노오오오오력’ 외에도 ‘포오오오오기’를 택하는 청년도 많은 것 같다. 공동체 차원에서는, 실업에 대한 구호제도를 강화하는 방안들이 이야기되고 있고, 특히 청년들을 위한 ‘기본소득’이나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들에게 일정한 소득보장을 해주겠다는 정책도 고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잡아야만 하는 ‘지푸라기’ 같은 정책들이 아닌가도 싶다. 졸업을 유예해주는 대학의 정책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렇다면 왜 청년들의 일자리가 이렇게까지 위태로운 것일까? 최근 이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가장 ‘확고한’ 대답이 바로 노동시장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장년층 노동자들의 임금이 너무 높아서, 성과 낮은 장년층들이 기업의 고용여력을 독차지해 결과적으로 청년들의 취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에는 청년고용과는 별개로 추진되었던 고령 노동자에 대한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 증대책으로 둔갑하고 있다. 언뜻 그럴싸해 보이지만, 과연 이것이 타당한 접근일까?

 

강의 자료 보기 2015_가을_사회를바꾸려면_김공회_발표문


 

3강 “세대론의 시좌 : 세대담론은 투쟁하는 주체의 담론인가”

서동진 (계원예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11월 27일(금) 저녁 7시 중앙대학교 R&D센터(102동) 805호 강의실

 

청년 세대는 철학에서 말하는 “구별”에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다. 청년 세대를 제외한 세대들은 단지 주어진 사실이지만 청년 세대는 자신을 주관화하고 자신을 다른 세대, 즉 기성세대와 대립시킨다. 연령대의 구별에 따라 만들어진 “세대” 가운데 하나인 청년세대는 유일하게 자신을 세대로서 주체화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른 세대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회 자체와 대립시키며 스스로의 자리를 확보한다. 이를 통해 세대란 규정은 구별이 아닌 대립의 범주로 도약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세대라는 인구학적, 사회학적 코드를 청년 세대 대 사회라는 정치적 대립의 코드로 코드전환(trans-coding)한다. 이렇게 볼 때 청년 세대는 사회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회의 내적 모순이 표상되는 “사회 속의 외부”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점이 “88만원 세대”이든 “오포세대”, “사토리 세대”, “달관 세대”, “n포세대” 운운의 이름들이 기약하고 또 조망하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짐작하게끔 도와준다. 그렇다면 세대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삶의 간난(艱難)을 돌파할 수 있는 괜찮은 주체의 위치인가.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청춘이 희망이다”란 담론도 허위지만 “20대는 개새끼”란 담론도 허위이다. 그리고 청년세대란 낱말에 깃든 윤리적 효력은 이제 소멸되었다. 그것은 그 자체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아니다. 사회적 적대를 주체화하는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누구인가는 항상 역사적 시간 속에 열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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