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자유인문캠프 라운드테이블 02 “청년,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

자유인문캠프 라운드테이블 02 “청년,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
2014년 11월 1일 오후 3시 – 6시, 공중캠프.

사회_ 고두현(자유인문캠프 기획단 잠수함토끼들)
토론자_ 박은선(리슨투더시티),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 좌인 오디 우더(공동체은행 빈고)
지원_ 서울시NPO지원센터


*1부 단위별 소개 및 공통 질문

사회자_ 안녕하세요. 저는 자유인문캠프 기획단 잠수함토끼들의 고두현이라고 합니다. 자유인문캠프가 2010년 가을에 처음 시작했는데요. 어느덧 햇수로 다섯 해가 지났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며 앞으로를 많이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청년,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을 열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이 나이가 들면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만, 저희는 그간 자유인문캠프를 통해 불합리한 사회의 모순들을 극복하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청년을 많이 만나고 관계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도 그렇지만 그들 역시, 청년기가 지나면 어떻게 운동을 이어갈지 고민이 많더라구요. 취업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지. 그래서 삶을 지속하려면 활동을 포기하라고, 대안적 활동들은 쓸모없는 짓이라고 취급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점차 강해지구요. 활동의 토대가 될 재원과 공간을 마련하는 일 역시 점점 어려워지고. 그렇게 자연스레 함께 했던 이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공동체가 와해되고. 결국 그간 공동체가 쌓아온 노하우와 문화들이 송두리째 사라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어두운 전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청년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영역에서 대안적 실천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 선배 단위들을 이어주려는 목적에서도 이번 라운드테이블을 준비했습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꾸준히 운동을 해온 세 단위를 모셨는데요. 리슨투더시티,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공동체은행 빈고입니다. 먼저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님부터 짧게 각자의 활동을 소개해주시면 좋을 듯 합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안녕하세요. 저는 리슨투더시티 박은선이라고 하고요. 리슨투더시티는 이름만 들어서는 뭘 하는 단첸지 대체 알 수 없는데요. 저희도 잘 모르고요. 매번 매순간마다 하는 일이 바뀌어가지고. 저희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걸 두려워하기도 하고 좋아하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이름을 지어버리면 그 안에 갇혀버리거든요. 그리고 사실 이 행사에 참여한 게 남사스러운데, 운동이라고 나와서. 저희는 아티스트지만, 다른 아티스트들은 저희를 운동권이라고 부르고 싶어하고, 운동권은 또 저희를 뭔지 모르는 사람으로 부르고 싶어 하고. 분류를 자기들 마음대로 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저희가 어떻게 불리느냐, 명칭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이따가 더 자세하게 얘기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좀 더 길게 설명해주실 줄 알고 맘을 놓고 있다가. (웃음) 저는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에서 나온 주현우라고 하고요. 현재 자본론 간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본론 간사를 한 지 2년째가 돼가고요. 새움은 한지 햇수로 10년 정도가 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저희가 지향하는 것은 국가나 또는 자본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지식이 생산되는 것에 대해서 대중이 자체적으로 대안적인, 진보적인 지식들을 생산하고 공유하고 확장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대안적인, 진보적인 지식 기반의 출발점으로 맑스주의를 표방하고 있고요.
하지만 맑스주의 자체를 교조화한다거나 하는 방식보다는, 출발지점을 그렇게 하되, 그것을 뛰어넘거나 다른 방식을 고민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바꿔 얘기하자면 출발점 이후의 영역은 새움에 들어오는 구성원들 스스로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저희는 기본적으로 자발성이라는 걸 강하게 중시하는데요. 그걸 바탕으로 현재 10년 정도 활동해왔습니다.
공간을 네 번 정도 옮겼는데, 현재는 상수역 근처에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본론 세미나와 마르크스주의 세미나 이렇게 두 개를 핵심으로 하고, 이외의 다른 세미나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환경 세미나도 있었고, 올해는 여성 세미나와 동남아시아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부분들은 추가적인 질문을 하면서 더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안녕하세요. 저는 공동체 은행 빈고에서 활동하고 있는 좌인이라고 하고요. 이 자리에는 저뿐만 아니라 같이 활동하고 있는 오디 상임활동가와 그리고 빈고가 연대하고 있는 빈마을에 살던 우더라는 친구도 함께 왔습니다. 앞으로 나오시죠? (웃음) 저희 공동체은행 빈고는 말 그대로 은행이긴 은행인데, 거기 모인 자본을 공동체들이 확장되고 유지되는데, 즉 활동의 지지기반을 다져가는 데 돈을 굴리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은행이고요. 소속된 조합원은 215명 정도, 자산은 2억 3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규모입니다. 보면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방 두 세 개짜리 전세도 얻기 힘든 그런 돈인데요. 그 2억 3천만 원으로 10개 공동체가 사용하는 공간의 보증금으로 이용하고, 그 공간들과 빈고가 긴밀하게 연대하면서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연대하고 있는 공동체들을 조금 얘기해드리면, 빈고가 초기 만들어질 수 있게 근간이 된, 빈집이 있습니다. 들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어요. 고개 끄덕이시는 분들도 계시네요. 또 청주에 있는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공부해서 용 되자”라는 뜻으로 열심히 생활과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 곳입니다. 또 최근에는 부천 ‘모두들’이라고 하는. 공유 주거 운동을 목표로 다섯 채의 집에서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곳도 있구요. 또 한 친구가 빈집에 단기 투숙을 했다가, 빈집 같은 곳을 부산에 만들고 싶다고 해서 ‘잘잘이집’이라는 곳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 곳과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공주에서 생태대안건축을 만들고 있는 두레배움터라는 곳이라든지, 대구에 또 공유주거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집’이라든지, 이렇게 여러 단체들과 또는 공동체들과 연대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빈집을 시작한 친구들은 진보적인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다만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은행에 맡기는 돈들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그 돈이 우리가 거부하고 싶은 국가나 자본의 힘을 얼마나 키우고 있는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우리끼리 힘을 모을 때 더 가능성들이 많다는 것들을 빈고 안에서 실현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빈고 이야기와 제가 살고 있는 빈집-빈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의 주제에 대해서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_ 각 단위별로 활동을 좀 더 길게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리슨투더시티에서 발표하시겠습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저희는 원래 팀원이 4명 정도 됩니다. 저는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대학에서는 미술사랑 실기를 강의하고 있고, 저 자신은 수유너머 회원이기도 합니다. 다른 2명은 시각 디자이너 2명이고요, 다른 1명은 영화감독을 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시각디자이너나 감독들이나 음악하는 친구들과 연대해서 일시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미술과 예술과 디자인과 건축과 도시와, 모든 것들을 섞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맨 처음에는, 대안잡지를 만드는 걸로 시작했었어요. 『어반 드로잉즈Urban Drawings』라고, 여기 1권은 다 팔려서 없지만, 2권이 바로 4대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휴머니즘과 모더니티의 관계라든가 그런 것들을 살펴보는 호였는데, 그때 지율스님 글 받으면서 잡지를 만들게 됐습니다. 저는 우연히 4대강 현장에 방문한 후로, 2009년부터 계속 그와 관련된 활동도 하게 됐습니다. 2010년에 저희가 4대강 지도를 그렸는데, 당시에는 거의 유일한 4대강 지도였습니다, 이따가 이 얘기는 더 할 거고. 2010년부터는 <서울 투어 프로젝트>를 시작해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습니다. 황학동 롯데 캐슬, 인왕산, 동대문, 청계천, 4대강 현장 등 사회적으로 모순적인 곳들을 많이 찾아갔습니다. 예를 들어 청계천 8가에 노점상들 철거하고 들어선 롯데 캐슬 베네치아라거나. 아니면 인왕산 같은 경우 서울에서 중요한 산인데, 그 산을 둘러싸고 아파트들이 난립되는 바람에 산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이 대비되는 공간을 찾아가기도 했고요.
청계천 녹조투어도 했습니다. 청계천에서 ‘얼마나 녹조가 자랐는지’ 구경하는 겁니다. 중요한 점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핵심적인 많은 토목 개발 기술들이 청계천에서 연마가 됐다는 점입니다. 저는 미셸 푸코를 좋아하는데, 그는 어떻게 해서 통치술이 바뀌었는가에 대한 담론을 얘기했습니다. 청계천이 그래서 중요한데, 2010년부터 계속 청계천 투어를 하면서, 그 곳에서 물이 얼마나 오염됐고,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누가 비리를 저질렀고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개발의 언어가 선취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 공간에서 어떻게 해야지 젠트리피케이션을 나이스하고 부드럽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주 완벽한 기술들을 보여주는 장소가 청계천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같이 보는 작업을 했습니다. 청계천의 소라탑 앞에서는 그것을 만든 클래스 올덴버그라는 작가의 약력을 읽는다든지. 물론 당연히 한국이랑 서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작가죠. 녹조 색깔로 컵도 만들었습니다. 야심차게 만들었는데 한 10개 정도 팔렸어요. 스페셜 버전으로 한 2개 남았으니까, 원래 만원인데, 2만원에 팔 예정입니다(웃음).
다음으로 리버풀리버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저희가 했던 작업 중에 가장 아트아트하고 아방아방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작업은 아방가르드한 예술에게 요구하는 것들 있잖아요. 약간 나이스하고 귀여우면서도, 상상감을 살짝 자극해주면서 세련된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그런 작업인데요. 이런 것들도 한번 해줘야 화이트 큐브에서도 보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것뿐이에요. 하지만 재밌었어요. 그래서 이게 리버풀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한국 사람들에게 리버풀을 상상하게 하는 작업인데요, 조선 사람들은 L이랑 R 발음을 구분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리버풀(Liverpool)이라는 도시를 상상하게 했더니 대부분 강(River)이랑 풀을 그리는 거예요. 영어를 쪼끔 잘하시는 분은, 간(Liver)이랑 풀을 그리더라구요. Liver가 간이잖아요? 그 다음에 그걸 기반으로 상상을 소설로 쓰게 했고, 열 댓분의 참가자들에게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상상의 리버풀 지도를 만들었어요. 지도 드로잉은 제가 했습니다, 제가 미대 출신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귀엽게 잘 그린 그림이죠?(웃음). 이 작업은 라캉의 거울 단계에 착안을 해서, 큰 도심 속에 사는 사람들이 그 도심을 어떻게 지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때문에 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게 상상들을 모아 그린 드로잉에는 리버풀이지만, 실재의 리버풀이랑 당연히 아무 상관도 없고 비슷하지도 않는다는 거에요. 오히려 정말 서울 사람들이 원하는 아주 유럽적이고 가장 이상적인 유럽도시를 하나 만들어지는 거죠. 리버풀을 거울로 서울 사람들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가 만들어진 거죠. 이런 방식으로 남한이 상상하는 북한의 모습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또 동대문 운동장이라는 장소와 그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는 작업도 했어요. 제가 잠시 건축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정작 도시의 이면은 기록되지 않더라고요. 동대문에서 노점상들이 투쟁하는 일, 이런 뒷면의 역사는 사실은 거의 기록이 안 되죠. 저는 거기에 충격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역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일이 될 수 있겠다. 저희가 노점상 투쟁이나 이런 걸 엄청 열심히 연대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오세훈 시장 때의 부정적인 인터넷 기사들이 나중에 굉장히 많이 삭제가 됐어요. 서울시에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뉴시스나 이런 인터넷 뉴스들이 다 삭제가 됐더라고요. 오세훈 시장 임기 때 새빛둥둥섬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나 여러 가지들이 이제는 삭제된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구나. 그래서 최인기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 만나면서 전후의 상황들을 계속 정리했고 저희도 기록을 했습니다.
공공건축이나 공공공간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또 자하 하디드에 대한 혐오가 있잖아요. 그 혐오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한 4년 정도 고민했던 것 같아요. 맨 처음에는 그냥 오세훈은 ‘오잔디’ 이렇게 간단하게 혐오하는 프레임으로 가다가, 아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공부도 좀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리슨투더시티 활동의 공통점은 딱 하난데, 그건 뭐냐면 공통공간에 대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란 것은 공유지이고, 그 다음에 커먼 웰스(Common wealth)이고, 누구에게도 소유될 수 없는 것인데. 누군가가 땅에 깃발을 꽂고 권리나 소유를 주장하잖아요? 그거부터 우선 굉장히 비틀어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런 시초축적, 맑스 전문가가 여기 계신데(웃음), 그런 시초축적이 맑스같은 경우에는 자본주의 초기의 현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경우에는 자본주의를 관통하는 현상이라고 했거든요. 저는 거기에 공감을 많이 하고. 데이비드 하비 같은 지리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본질로서 자본 축적이라는 게 지리적 문제라는 것들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관심있는 것도 어떻게 땅이나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들이 누군가들에게 어떻게 침해당하고 있는지를 공부하고 공유하는 건데요. 저희가 지율 스님과 만나고 2009년부터 내성천에 가기 시작했는데, 지금 여기는 영주댐 현장이에요. 4대강 공사 중에 마지막 현장인데요. 최근에 따끈따끈하게 소송에서 졌어요. 삼성물산, 수자원공사, 그리고 환경영향평가에 참가했던 세 회사를 피고로 해서 소송을 했는데,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졌습니다. 하지만 원고의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다 진 것은 아니고요.
사실은 우리가 지금 공부할 때 실존주의는 거의 공부 안 하잖아요. 요즘은 들뢰즈나 맑스나 게오르그 짐멜을 많이 공부하는데, 내성천 때문에 실존주의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는 것 같아요. 장소의 상실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장소는 무엇이고 이렇게 깊은 슬픔을 가져오는 결과들의 원인은 무엇인지 굉장히 많이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내성천은 이제 산산조각이 나고, 심지어는 여기 케이블카를 곧 놓으려고 준비 중인데요. 여기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먹황새라는 새가 오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새가 더 이상 여기 살지 못하고 다른 데로 이주했는데요. 이런 상황이라 이 곳에 지율스님이 거주하고 계시고, 저희는 거기에 컨테이너 갤러리를 갖다놓고 4대강이나 내성천에 대한 전시를 계속 하고 있어요. 아직도 하고 있고요.
이 갤러리가 참 사연이 많습니다. 4대강에 대한 얘기하는 것 자체가 금지였던 때가 있었어요. 2009년이나 2010년인데. 4대강 뉴스가 경향이나 한겨레에도 안 나왔어요, 2011년에는 심지어 한겨레에 4대강 사업 국정홍보 전면광고가 한 달 내내 실렸어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한겨레 광고하는 아저씨한테 너무 화를 냈거든요.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너희가 진보 언론 맞느냐.” 그랬는데 “어쩔 수 없다”고.(웃음) 그래서 그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었어요. 저런 작은 공간이. 당연히 자본이나 국가한테 돈을 못 받죠, 4대강 얘기니까.
근데 이렇게 제 돈이나 리슨투더시티 돈과 노동력을 착취해서, 스스로 착취해서 피와 땀으로 만든 전시들이었는데, 4대강에 대한 공사비리를 정리하는 작업도 했어요. 그런데 문화관광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이 작품이 두 번 정도 뜯겼었어요. 그리고 2010년에 4대강사업에 반대하며 문수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셨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서 티셔츠로 해서 기억을 하게 하는 작업을 했고요. 4대강사업 전후를 보여주는 사진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두리반 뒤에서 저희가 연대할 때도 갤러리를 갖다 놨고요. 그때부터 단편선이나 다른 뮤지션 친구들, 그러니까 자립음악생산조합 친구들이랑 계속 연대하면서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 관계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가난하지만 생존할 수 있는 거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두리반 이후 마리에서도 계속 연대했었는데. 마리에서는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심리적으로도. 이따가 더 이야기 나누고요. 새움에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시간이 되게 촉박한 것 같아요. 차라리 제 시간을 떼어서 드리고 싶은데. 저는 좀 짧고 굵게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뭐 상대적으로 아무래도 교육 활동을 중심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보니까, 대부분이 세미나 활동에 집중이 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한 해에 전반기 후반기 해서 두 번, 대략 기간으로 따지면 6개월씩 나눠서 진행 한다 볼 수 있겠죠. 아니면 최소한 4개월씩 묶고, 중간 겨울이나 여름 때에는 특강을 준비한다거나, 이런 방식으로 1년의 세미나 프로그램을 짜고서 진행을 합니다.
세미나 프로그램은 일단 기본적으로 뼈대라고 볼 수 있는 건 두 가지 세미나가 있는데요. 말씀드렸던 자본론 강독 세미나가 하나의 축이고, 다른 한 축은 맑스주의 세미나입니다, 초기부터 시작해서 좀 제 3, 4 인터내셔널까지 나오고, 동남아시아나 여타 지역에 있는 맑스주의까지 살펴보는 세미나입니다, 대부분 세미나 기간이 긴데요. 왜냐하면 자본론 같은 경우는 한 권당 기본적으로 6개월의 시간을 잡습니다. 1~3권을 보게 되면 기본적으로 한 1년 반이 나오게 되는 거죠. 그리고 맑스주의 세미나 역시도 기본적으로 최소 1년, 좀 길었을 때는 풀타임으로 2년 정도 소요됩니다.
사실상 두 기본 토대를 밟게 되면 3년이나 4년, 대학 기간이 나오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저희가 기본적으로 세미나를 할 때 생활하는 분들이 오신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어요. 그게 무슨 의미냐면, 밥 먹고 책 읽고 열심히 공부하고 또 밥 먹고 책 읽고 공부하고 이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생활을 해 나가시는 분들이 틈틈이 짬을 내서 자기 스스로 공부를 하고, 힘을 길러내는 과정들을 가져가는 거기 때문에, 진도를 빨리빨리 뺀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어느 정도 경험상 축적된, 일주일에 요 정도씩 볼 수 있겠구나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짜다 보니까 그렇게 됩니다.
주된 프로그램이 두 가지가 있다면, 나머지 프로그램은 이 두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진행하신 분들께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안한 다른 세미나들입니다. 저희 새움의 가장 특징 중에 하나는 운영위원회가 열려있다는 건데요, 새움 회원이든 그냥 세미나 참가하시는 분들이든 간에 운영위원회에 들어오실 수 있으세요. 운영위원이 따로 있지 않아요. 그래서 운영위원회는 기본적으로 그렇게 열려있는 공간에서 상호 제안과 토론을 바탕으로 해서 결정된 사안들을 주체적으로 실천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를 들어 최근에는 환경 주제로 번역을 하시는 분 중에 동남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계셔서, 그 분들 중심으로 관련 주제들을 바탕으로 세미나를 제안하고 개설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움은 그런 결과들을 부수적으로 책으로 만들어내는 과정 역시 꾸준하게 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맑스주의 역사 강의』(한형식, 2010, 그린비)도 그러하고. 그 외에도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하야시 나오미치, 유승민 양경욱 역, 2011, 그린비), 또 최근에 나왔던 『현대 인도 저항운동사』(한형식, 이광수, 2013, 그린비)라거나 이런 것들도 대부분 세미나를 통해서 나왔던 주제들을 심화 발전시킨다든가, 세미나에서 나온 주제들을 정리하는 방식을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교육활동이라는 게 사실 단순하게 가르치는 한 사람이 있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새움에서는 간사도 그래서 그런 자격 조건이라는 게 뚜렷하지 않습니다. 바꿔 얘기해서 새움 회원이고, 세미나를 어느 정도 하셨던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제안 사항에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토대로 세미나를 열 수 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새움이 전제하고 있는 맑스주의라는 걸 벗어나는 데에는, 사실 그렇게 상관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새움이라는 공간 자체가 맑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진보적 지식의 담론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활동들을 자유롭게 좀 전개하는 부분들이 있고요. 그런 식으로 범위를 좀 넓혀서, 활동의 범위들을 나름대로 자생적으로 넓히려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조금 다른 부분이라면, 새움이 교육 공간이기도하지만 연구라는 부분도 표방하고 있어서, 새움 자체에서 하는 연구도 있겠지만 기존의 맑스주의나 사회비판적 연구들 혹은 새움에 계셨던 학자 분들이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새움과 당인리의 사이의 관계는 이런 겁니다. 학자와 전문 연구자라는 분들이 나름대로 연구하시는 내용들이 있으실 텐데 그것들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고 또는 대중들이 그걸 어떻게 읽을까, 또는 들을까, 공부할까라는 부분에서, 새움에서 그런 것들을 월례강연으로 설정해서 대중강좌를 열어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토론도 해보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어떠한 활동들인지 간에, 새움은 유정형이면서 무정형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기본적인 뼈대는 맑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진보적 지식의 대중화이지만, 그 틀에서 방향이라는 것들은 새움의 회원들이 자생적이고 자발적으로 해나가는 것에 많은 무게를 둡니다. 그래서 사실 어제 새움 프라임이라고, 동북부 지역 대학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학내 학습모임을 꾸려보기 위해 행사를 했고, 해가 뜰 때까지 같이 술을 먹고 지금 여기 와있습니다만, 이런 일들이 총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행이 된다고 하기 보다는 핵심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회원들 스스로 그 문제의식에 대해 동의한다면 그 나름대로 실천을 통해 자발성에 따른 책임을 뒷받침한다는 방식으로 그동안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고 지금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인 저희 행사,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요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빈고와 빈집 그리고 빈마을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드리도록 할게요. 빈집과 빈마을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살고 있어요. 여기는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있고 분홍색깔도 있고 우파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도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제가 설명하기 앞서 저희는 장기 투숙객, 장투객이라고 저희를 지칭하곤 하는데요. 워낙 빈집은 내가 들어와서 어떻게 살아가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빈집을 풀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게 굉장히 다양하다고 봐요. 그래서 원래 이런 자리에도 한 사람이 나오지 않고 여러 사람이 나와서 이야기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 옆에도 친구들이 나와 있는데, 어떻게 빈집에 들어오게 됐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들으면서 더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더(공동체은행 빈고)_ 안녕하세요. 저는 빈고 조합원이자 빈집에서 2년 반 정도 살았었고 지금은 본가에 내려가서 지내고 있는 빈집에서 별명 우더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냥 호기심에 왔는데 갑자기. (웃음) 당황스럽긴 한데, 제가 빈집에서 살기 시작한 게 이제 거의 3년이 다되어갑니다. 제가 중학교 때 대안 교육을 받아서, 그 이후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서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을 어떤 식으로 배워야할까를 고민했는데. 개인적으로 대학이라는 곳은 가고 싶지 않아서 다른 학원들을 많이 알아봤는데 서울에 제가 딱 생각했던 그런 학원이 있는 거에요. 그럼 거기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서울에 이렇게 돈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올라와서 지내는 것에는 큰 부담이 있었어요. 사실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잖아요.
그러다 빈집이라는 곳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는 곳이 있다 해서 한 번 찾아갔죠. 그날이 마침 마을 잔치를 하는 날이었어요. 빈집에 여러 빈집들이 있는데, 그 집들이 다 같이 맛있는 음식 같은 것을 만들어와 가지고 모여서 맛있게 먹는 자리였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 갔어요. 그런데 되게 신기했던 게 다들 굉장히 반갑게 환대를 해주고 맛있는 것도 챙겨서 주고 자기소개도 하고 그러는 게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옛날에 중학교 때 느꼈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런 것에 추억도 느끼면서 좀 어색하기도 하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과거와 같은 무언가가 다시 생겨버렸네 하면서. 제가 학교 다니면서 다시는 공동체 같은 곳에는 살지 말아야겠다, 했었는데 다시 이런 곳에 와서. 운명이었던 걸지도 모르죠. (웃음)
그렇게 와서 지내다보니까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해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려 놀기보단 집-학원-집-학원의 생활을 반복했었어요. 그러다 사람들하고 대화도 좀 하게 되고 집에서의 공간에서 사람들하고 같이 놀 거리가 있으니까, 이 빈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러다가 빈고라는 곳도 알게 돼서 빈고라는 곳이 대체 뭔가 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가입하면 좋아요’ 하길래 ‘음 그렇구나.’ 가입을 했다가. 조합원 교육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참여를 하다 보니까 어떤 활동인지 알게 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오디(공동체은행 빈고)_ 네 저는 빈집에 살고 있는 오디라고 하구요. 오기 전에 공중캠프가 뭐하는 데냐고 친구들이 물어보는 거에요. “어, 좌인이 하는 건데 나는 그냥 가는 거야” 하니까 한 친구가 “어, 나도 그렇게 따라갔다가 가서 발표했다”고. (웃음)
그게 그렇게 되네요. 저는 그냥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우연히 빈집을 알게 됐구요. 그냥 알고만 있다가 살 곳이 필요해져서 찾아오게 된 게 빈집이고, 지내다보니까 재밌는 사람들도 많고 재밌는 활동들도 많아서 그렇게 지내게 된 것 같아요.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네, 저희 구구절절 저희 좀 더 설명드리면, 어쨌든 이 질문에 대한 힌트도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와중에 빈집이라는 곳을 알게 됐고 요즘 사회적 경제라는 말이 많이 들리잖아요. 그 관련된 일을 했는데 내 삶은 전혀 사회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고 내 삶과 노동이 또 분리되게 돼버리는 현상에 대해서 좀 괴리감을 느끼게 될 즈음, 빈집에 들어와서 살게 됐어요. 지금은 빈집 장투객 3년 차구요. 그래서 여기서 내가 하는 노동이라는 것과 내 일상이라고 하는 것을 일치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지향하는 것, 살고자 하는 방식이 그냥 그게 내 삶이 됐을 때 어떻게 내가 먹고 자고 아플 때 치료받고 이런 것들을 같이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하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빈집은 저희가 들어와서 어떤 비용을 지불한다는 점에 있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스트하우스와도 비슷하지만요, 더 깊은 일상을 나눈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지향하면서도 그리고 규정된 가치나 지향점을 강요한다거나 그런 깃발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동체적이지 않은 곳이기도 합니다. 굉장히 희한한 곳이고요. 저희는 저희 스스로 정글 속에서 살고 있다, 누구는 저희를 기사로 쓸 때 굉장히 민주적이고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쓰세요. 그런데 저희는 “이거 다 거짓말이다,” “살아보지 않아서 그렇다”라고 말하죠. 저희가 며칠 전에도 회의하다가 싸움이 크게 나서 한 친구는 울고 또 사과하고.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정글 같은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가 뭐 같이 지향하는 것들이 없다고도 할 수 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데요. 세 가지, ‘공유’, ‘자치’, ‘환대’를 실천한다는 점은 저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아까 우더가 환대를 받았다는 데, 우더가 좀 잘생겨서 환대를 받았나봐요. 저는 처음에 갔을 때 전혀 환대받지 못했거든요. (웃음) 주인이 따로 있지 않고, 그리고 손님이 따로 있지 않아서, 누구나 주인이고 누구나 손님이기에, 공동체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을 때, 환대해야하는 것 그리고 공간이 됐든 자본이 됐든 그런 것들을 함께 공유하려는 것을 같이 실행하는 것, 그리고 여긴 누가 케어해준다는 게 따로 없거든요. 활동가도 따로 없어요. 빈고는 오디랑 저랑 몇몇 활동가들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빈집 같은 경우는 활동가들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공간을 유지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자치’라고 하는 부분들도 굉장히 중요하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해석인 거구요. 아마 빈집에 사는 친구들에게 저 세 가지 가치지향은 저마다 생각이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굉장히 편협한 빈집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다는 걸 꼭 유념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네, 저희 빈집 같은 경우에는 지금 현재는 여덟 개에서 열 개 정도의 집들이 만들어져서 함께 살고 있구요. 지금 7년 차인데, 이제까지 만들어진 집 개수는 한 스무 개 정도가 넘는 것 같아요. 만들어지고 없어지고를 계속 반복하고 있고요. 각 집 별로 다 이름들이 있어서,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운영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서 살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 사람들도 워낙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 40~50명 정도로 수치가 왔다갔다 하구요. 저희 집도 워낙 단투객들이 많아서 일곱 명이 됐다 여덟 명이 됐다 어떤 날은 장투객들이 애인집에 가서 자는 바람에 세 명이 됐다 뭐 이렇게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게스츠 하우스(Guests’ House)를 지향해요. 아까 말한대로 누구나 손님이고 누구나 주인일 수 있는, 그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는 주인이 따로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비용을 지불한 만큼 서비스를 받는 게 당연한 구조인 건데 그런 것들을 없애고자 하는 장치가 곳곳에 있습니다. 초기에 세 명의 친구들이 전셋집 1억 2천만원짜리로 시작을 했어요. 보통 여러분들 같이 어떻게 사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자취를 할 때 친구가 보증금을 냈고, 친구가 다 자기의 물건을 채워놓은 상태에서 저는 얹혀살았어요. 지금 용어도 제가 ‘얹혀살았다’고 이야기 했죠. 그랬기 때문에 제가 월세를 좀 더 낸다거나 똑같이 월세를 분담해도 내 집 같지 않았어요. 이게 알게 모르게 저희가 자본에 대한 부분들을 인정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빈집을 시작한 친구들은 내가 돈이 좀 있어서 보증금을 넣기는 했지만 이 자본이라는 것은 내가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은 개인의 노력과 개인의 실력으로 쟁취된 거라고 해석하지만, 결국 이 사람이 자본을 갖게 된 데에는 수많은 행운들에 의해서 가지고 있는 건데. 이 돈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돈으로 또 돈을 벌게 되는 구조가 과연 당연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었어요. 그래서 자금을 어떻게 댔는지 상관없이 모두 n분의 1로 분담금이라고 하는 것들을 내고 살기 시작했어요. 분담금 안에는 월세, 전기세, 수도세, 그리고 ‘적게 벌고 적게 쓴다’를 지향해 한 달 식비까지 다 포함해 당시 6만원에서 한 10만원 사이의 돈을 내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늘 들어올 수 있게 전셋집에서 월세집으로 전환을 했고. 왜냐하면 저희 자본으로 전셋집을 구하면, 집의 개수를 늘리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그리고 지금 해방촌이 경리단길과 결합돼서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는 바람에 월세 값이 너무 올라서, 살고 있는 저희는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욕이 나오는데. 지금은 분담금이 한 22만원 정도 됩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처음처럼 보증금을 낸 것에 대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싸움이 일어난다거나 보증금을 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보증금을 빼야 되는 경우에 돈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권력관계가 생기기도 하고 그 집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서 만들어진 게 ‘우주살림협동조합 빈고’에요. 각 집의 보증금을 중앙의 금고로 모으고, 그 금고에서 각 집의 보증금을 대출해주는 방식. 그래서 초기에 그 집의 보증금을 같이 책임을 못 졌던 사람들도 나중에 빈집에 들어왔을 때 당당하게 보증금에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 금고에다가 돈을 출자할 수 있게끔 하는 구조를 만들었고요. 이게 조금 발전을 해서 지금 현재 ‘공동체은행 빈고’라고 하는 것들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사실 빈집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용어 규정도 저희 안에서는 ‘뭐를 빈집으로 할 수 있느냐’ 의견이 분분해요. 그래서 빈마을이라고 부르는데요. 이렇게 살다보니 이제 빈고가 빈집 말고도 청주, 대구, 부산, 부천, 이런 여러 지역들의 공동체들과 연대하면서 더 큰 구조의 은행을 지향하게 됐어요. 기존의 은행들을 당연하게 이용하시죠? 돈 맡기시잖아요.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 지는 사실 모르시죠? 그 은행에 돈을 맡기는데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맡기는데, 거기는 기업이잖아요. 은행은 국가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당연하게 그 돈을 맡기고. 당연하게 맡겨진 돈으로 은행들은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곳들에 돈을 굴리고 있고, 거기에서 벌어들인 잉여금을 돈을 낸 사람 또는 돈을 이용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콩고물만 떨어뜨리고 다 은행에서 자본을 잠식하게 되죠. 남이 맡긴 돈으로.
이 구조를 당연하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게 빈고구요.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자본 규모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들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빈고는 우리가 돈을 맡기고 돈을 이용하는 것도 신용등급이라는 것들로 지금은 결정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 금고가 이 지갑이 나의 지갑이고 우리의 지갑이라는 게 인정하고, 개인의 신용등급이라는 것과 상관없이 적절하게 이용하고 다시 그걸 반환 할 수 있는 자치성을 가지려 해요. 그럴 때 우리는 건전하게 돈을 만들어내고 돈을 굴릴 수 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지. 그리고 ‘돈을 코뮨이나 공유지로 확대하는 것에 써야한다’는 지향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1년을 굴리면 잉여금이 1000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가 나옵니다. “어쨌든 자본으로 자본을 버는 구조가 아니냐?”라고 의문을 던지실 수 있는데요. 그 돈을 어떻게 같이 나눠 갖느냐라는 부분이 원래의 은행에 반하는 운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닫힌 공동체에 대한 염려를 많이 갖고 있어요. 우리가 잘 살게 된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돈을 낸 사람뿐만 아니라 돈을 이용한 사람, 저희와 힘을 실어주고 있는 외부 사람들,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지구인 모두. 지구 생명체라고 저희는 표현하는데요.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서 저희는 잉여금을 돈을 낸 사람과 돈을 이용한 사람과 동의하에 외부에 지구분담금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돈을 외부로 돌리는 일을 또 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게 저희 빈고입니다.

사회자_ 저희가 사전모임을 다녀왔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두들 달변가이셔서 시간을 꼼꼼하게 체크했습니다. 다들 잘 지켜주셔서 감사하구요. 공통 주제를 질문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세 단위를 이 자리에 모신 것은, 누구보다 앞서 2000년대 초중반부터 각자 지형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운동들을 지속해왔기 때문인데요. 활동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동력과 힘들었던 지점은 없었는지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리슨투더시티부터 각 단위별로 3분씩 짧게 답변을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힘든 게 너무 많아가지고. 3분으로는 안돼요. 30분주시면 눈물로 하소연할게요. 저희는 동력이라는 거는 없고, 동력이랄 게 있다면. 사실 내부에서도 있겠지만 외부에서 오는 것도 사실 크죠. 사회 전반의 비상식의 강도가 점점 커지니까 그것에 어떻게 대비를 하고 우리들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진단하는 것들이 필요했던 건데요. 저희는 어떤 뜻에서 공공의 위기를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내성천만 해도 지금은 다 망가졌는데 망가진 것들을 보고 있으면 사실 굉장히 힘들어요. 애정 있던 공간들이 만약에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장면들을 보면 굉장히 힘들죠. 그리고 두리반에서 승리했던 경험은 우리 집이 승리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때는 기쁜 경험이었고 그때 만났던 친구들과 아직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하고 있어요. 그 때의 여러 가지 관계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들이 사실은 되게 뜻 깊죠. 그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하나의 동력이라고 볼 수 있구요.
힘들었던 지점은 마리 때처럼 용역깡패랑 싸워서 맞으면 당연히 아프니까 힘들고요. 강 같은 경우에는 공간이 무너지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한두명 정도 조력자가 나타나는 것들도 되게 신기한 거 같아요. 하여튼 힘들어요. 계속 힘들고 돈 같은 것도 저희가 안 벌고 안 쓰고 하면서 운동을 하는데 이따가 그런 얘기를 좀 더 해보면 좋을 거 같아요.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3분 발표 시간 지키기가 제일 힘들구요. (웃음) 사실 비슷할 거 같아요. 그러니까 자금, 그리고 사람. 어쨌든 제일 힘든 건 사람이죠. 원동력도 사람이고 힘든 것도 사람이죠. 어쩔 수 없이 이런 활동들이라는 게.
제가 새움을 알게 된 게 2008년이에요. 6년쯤 전인데 그 당시에 새움이 관악과 성북 쪽에 분관을 냈어요. 마침 제가 다니는 학교가 성북 쪽에 있어서 거기서 알게 됐어요. 군대 다녀오고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게 됐는데, 사실은 제가 군대 가고 나서 그 분관은 망했어요. 대부분 그렇듯이 유지되는 거 그 자체가 쉽지가 않은 거죠.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월세를 꼬박꼬박 낸다는 게 어렵죠. 특히나 새움 같은 경우에는 강의비가 없고, 세미나 참여할 때 참가비도 없기 때문에 더 그렇죠, 그건 저희의 가장 큰 성격 중의 하나인데, 돈이라는 장벽이 생기게 되면 기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나름대로 위계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새움에 후원을 해주시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게 아닌 방식의 참가비를 걷는다고 했을 때는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요. 또 문제는 이 원칙이라는 게 한편 힘이 들 때가 있는 거에요. 그것 때문에 빚을 항상 상시적으로 갖고 있거든요. 이제 10년쯤 되니까 빚에 대해서 생각이 없어요. 빚을 내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A가 빚을 냈는데 파산할 거 같으면 “이제 B는 누가 할꺼냐” 이런 방식의 그런 게 있어서. (웃음) 하지만 한편으로 원동력이 사람이라고 말씀드린 게 그 당시 세웠던 성북 새움 분관은 없어졌지만 그 곳을 통해 만났던 두 사람이 지금 가장 핵심적으로 새움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저고, 또 다른 친구도 간사랑 여러 가지 역할들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가끔씩 좋은 부분도 있어서. 그래서 활동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빈고 이용하시라고 하려고 했더니 반환이 안 될 거 같네요. (웃음) 활동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었느냐, 저는 사실 백수가 돼서 활동을 하지. 2년 동안 계속 빈고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백수가 돼서 산지는 사실 몇 개월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얘기를 들을 건 딱히 없을 거 같은데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두 가지 관점이 있을 거 같아요. ‘빈집 그리고 빈고 자체가 어떻게 활동을 지속하게 됐느냐’와 ‘빈집을 기반으로 두리반이라던지 외부에서 투쟁이라는 것들을 지속하는 친구들이 어떻게 그걸 지속할 수 있게 됐느냐.’
초기에 빈집을 만들었던 친구들, 지금은 팔당이나 두물머리 투쟁을 하다가 아예 거기 농사를 짓고 살면서 다양한 활동을 연장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우리가 활동이 흔들리게 되는 배경이 생계의 문제인데 빈집에서는 그게 일단은 해결이 돼요. 그래서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껏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한 사람이 부담하기에는 조금은 버거울 수 있는 22만원이지만, 초기 빈집에서는 6만원으로 한 달동안 먹고 자고 생활했어요. 그러니 자기가 하고 싶은 활동들을 더 힘 있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됐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빈마을 차원에서는 치열합니다. 저희가 자치가 되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런 빈마을의 활동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이 공간을 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나가는 작업들이 중요합니다. ‘분담금을 내는 것으로 나의 책임을 다했다’ 또는 ‘내가 청소를 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 했다’라고 생각할 경우에는 빈마을이 확장되거나 더 즐겁게 유지되는 것들은 불가능하거든요. 그렇게 서비스처럼 이용하는 것에 우리 모두 익숙해진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자발적으로 활동을 하고 하나의 자립적인 주인이 될 수 있게끔 하냐는 것은 늘 조금 더 살았던 사람들, 혹은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빈집이 마치 자기 집이 된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고민인 거 같고요. 그게 가장 힘든 점입니다.

사회자_ 저희가 사전인터뷰를 다니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서 더 나누고 싶다는 얘기들이 있었는데요. 잠깐 개별질문을 드리자면, 리슨투더시티 같은 경우에 저희가 인터뷰를 갔을 때 운동 단위가 국가나 자본의 지원을 받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저희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는 정규교육을 받은 평범한 미술가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관계들을 끊고서 어떻게 미술작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술가든 활동가든, ‘조직, 기관이라는 것, 기업이라는 것에서부터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고 얼마나 거리를 둘 것인가’하는 기술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만약 내성천 운동이라고 하면은,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운동이 뭔지 다시 한 번 당연히 생각을 해봐야하고, 가장 중요한 것들은 운영하는데 돈을 얼마나 어디서 끌어올건 지에 대해서는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해요. 저도 아직 한지 5년 밖에 안됐지만, 내성천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환경운동이 망할 수밖에 없구나. 아니면 시민운동 진영이 왜 망했는지를 알겠는 거죠.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미술기관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다가 이제는 다 없어졌어요. 뿌리를 썩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거죠. 거름이 지나치면 뿌리가 썩잖아요.
지금도 박원순 시장이 대통령이 되기를 다들 바라는데. 그러면은 분명 시민사회에서 그 사람을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콩고물을 기대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형님 아우 하면서 나눠준다는 거죠. 좌파건 우파건 나눠주기가 고질적인 문제라고 봐요. 나눠주다 보면 결국 정권을 잡으려 했던 목적을 상실한 상태가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시민운동 진영이 진짜 바닥을 쳤다고 봐요.
지금 이 행사도 서울시NPO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았는데 저는 이것도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일본의 경우에도 NPO들이 다 망했어요. 왜냐면 우파 시장들이 들어서면서 제일 먼저 없애는 것이 NPO 지원금이거든요. 지원이 없으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을 해야 하고, 운동이 돈이 없어서 못하면 안하면 돼요. 그걸 왜 해요? 자기네들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는 거잖아요. 활동가를 못 둔다고 하면 안 두면 되잖아요. 근데 사람들이 꼭 활동가를 둬서 월급을 줘가지고 힘들게 하다보니까 어떻게든 기업 돈도 받아야하고 정부 돈도 받아야하고 삼성 돈도 받아야 되고. 영주댐 같은 경우에도 삼성물산의 현장인데 삼성에서 후원받는 분들이 와가지고 반대 운동을 하세요. 그러면 당연히 저희가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죠. 이런 것들이 운동에 있어 분명히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_ 새움한테도 개별적으로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새움이 강조하는 자율성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고, 또 지난 인터뷰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새움의 경우 활동이 저조하고 더 침체됐을 때 외연을 확장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노력을 했었다는 점인데요. 그 두 가지에 관해 좀 더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말씀해주셨다시피 이미 사전 인터뷰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굉장히 긴 시간을 통해 열심히 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이 자발성에 관한 거였죠? 저희는 계속 자발성을 강조하는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자발성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에요. 한쪽의 면이 자발성이라고 한다면 그 다른 뒷면에는 책임이 있어요. 책임을 따를 때 자발성이라는 동전을 세워지는 것이죠. 결국 저희가 말하는 자발성은 ‘책임이 뒷받침 된 자발성’이고 바꿔 얘기하면 자기 스스로 하겠다는 생각이 명확해지는 게 중요합니다. 모두에게 그것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기 보다는 그 지점에서 출발해야 장기적으로 소위 말하는 자기-운동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에서 저희가 항상 주요 뼈대라고 하는 자본론 세미나와 맑스주의 세미나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세미나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과정이 아니거든요. 세미나를 하는 과정 속에서 비판하고 토론하면서 ‘아 그러면 지금 사회에서 우리 삶은 또 어떤 식으로 이어나가야하느냐’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던지게 되고, ‘그럼 내가 이런 방식으로 활로를 찾아보겠다’라는 활동들이 새로운 의미의 세미나로 도출이 되고, 그 활동이 지속이 되는 과정들을 사실 일구어 나가야 하거든요. 항상 이번이 100이었으니까 내년에 150을 바라는 게 아니라 100이 유지가 안 되더라도 50이나 40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차후에 100이나 150을 하려는 사람이 있도록 흔들리지 않고 길게 보고 가자는 게 저희 기본적인 고집이어서요.
그래서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면, 다른 게 아니라 저희는 항상 ‘내년은 올해보다 나쁠 거다’ 또는 ‘나을 거다’라는 생각을 잘 하지 않아요. 상대적으로 ‘더 좋을 거다’ 혹은 ‘나쁠 거다’라는 생각보다는 우리가 이걸 지금 왜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한편으로는 무리하지 않아요. 대단하게 확장을 하지 않고, 무리하지 않는 범주에서 확장을 하는 거죠. 바꿔 얘기해서 확장을 했는데 실질적으로 버티기 어렵고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라는 판단이 들면 바로 운영위원회에서 문제 제기가 되고, 거기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수정이 이뤄지는 방식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운동이라는 성격상 대중과 만나는 접접을 줄이는 방식으로 활동을 축소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설사 축소하더라도 대중적인 만남, 강의들은 계속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져가야한다는 게 판단의 지점입니다.
성북 새움과 관악 새움을 만들던 당시도 그런 문제의식이었데요.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나빠졌다면 더 나빠질 수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문 딱 걸어 잠그고 잘되는 곳 마포구만 집중해서 이 공간만 잘 살리자가 아니라 이 공간은 이 공간 나름대로 하되 우리 나름대로 역량을 타진해서 지금 사람들을 좀 더 만날 수 있는 창구들을 열어보자. 그리고 거기서 안 된다면 그 다음에 수순을 생각해보자 라는 식으로 출발 했던 거고.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에 결정을 했었던 한형식 선생님은 나중에 성북 새움 출신의 두 사람이 끈질기게 지금까지 남아 있으니까, ‘봐라 내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렇지’라는 얘기도 농담으로 하세요.
하여튼 저희는 그런 식으로 수세의 국면에서는 어떻게 후퇴할까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후퇴하는 방식이 무조건 빨리 짐 싸서 나가는 후퇴가 아니라 그럼에도 어떻게 치고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나가는 게 맞는 거죠. 퇴로를 만든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이길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야 하는 거지. 잘 도망치는 퇴로를 만드는 건 중요한 게 아니죠.
그래서 다시 자발성이라는 내용이 중요해집니다. 운동에서 판단하는 주체들이 이런 상황을 정말 자기 문제로 생각하고 자기 운동으로 생각하면, 결합과 토론와 합의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뤄질 수 있거든요. “앗 이건 좋습니다.” “이건 아닌거 같아요.” 바로바로 얘기가 나오고 그걸 바탕으로 책임을 지는 활동들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운동에 있어 장기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사회자_ 비슷한 차원에서 빈고에게도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오늘 규칙을 만들면 내일 구성원이 바뀐다”라고 할 정도로 빈마을은 구성원들이 굉장히 유동적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빈집-빈마을-빈고로 계속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과정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일단 제가 빈집과 빈고를 붙였다 떨어뜨렸다 이렇게 얘기를 해서 헷갈리실 거 같아 분리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빈고는 빈집보다는 조금 더 규칙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규정들을 나름 협의하면서 만들어가고 있고요. 왜냐면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굴리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무엇이 더 바람직한 것들인지, 이 돈을 쓰려고 하는 것들이 공동체가 확장되고 유지되고 더 활발해지는데 도움이 되는지, 그런 큰 지향만 있어요. 여기서 공동체라고 하는 것도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열린 곳이냐 닫힌 곳이냐’라는 최소한의 규정으로 모든 것들을 보고 있구요.
빈집 같은 경우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여기서 이 친구들과 규칙을 정하지만 이 중 누군가는 내일 나갈 수도 있고, 한 달 만에 나갈 수도 있어요. 구성원들이 바뀌게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규칙이라는 게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리어 규칙에 구애를 안 받으려고 하는 게 있구요. 그런데도 계속 환대가 가능한 것, 권력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들이나 생태주의를 지향하는 점들이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가만히 보면, 결국 삶에서 배우게 되는 거 같아요. 저는 빈집에 살면서 제 감각이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적으로 길들여져 있구나 라는 것들을 문득문득 느끼거든요. 지금 이 발표 오는 것도 제가 ‘아차 실수했구나’라는 걸 오면서 생각했는데, 왜냐면 사전에 이 이야기들을 전체에게 공유를 하고,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여기 와서 함께 이야기할 사람은 누구인지를 결정하고 왔었어야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정보를 독점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처럼 제 스스로 감각이 자본주의적이구나 라는 걸 살면서 자주 느껴요,
예를 들어, 식비 같은 경우 모두가 내는데 모두가 그 돈을 써서 밥을 해먹는 건 아니잖아요.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보면 우리의 가치들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다 드러나게 되거든요. 그동안 빈집에서 앞서 생활에 대한 선택들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내 감각이 조금 잘못 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그러면서, 그게 굳이 규칙으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그게 삶으로 녹여진 사람들을 보며 알게 모르게 저에게 이식되는 것들이 있는 거 같아요. 또 예를 들면 저희는 언니 오빠 형이라 부르지 않고 닉네임을 부르는데 그것이 가지고 있는 관계에 있어 권력을 없애고 평등함을 만드는 큰 장치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옆에 있는 오디가 몇 살인지 아직까지 몰라요. 그리고 우더도 저보다 훨씬 어리거든요. 열 살 차이 나는 친구들도 있고 한데, 지내다보면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 적다하는 걸 전혀 감지하지 못해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특성이나 그 사람의 품성에 따라 관계 맺기를 하거든요.
질문에 에둘러서 멀리 온 것 같기는 한데 저희가 규칙이 특별히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초기에 지향했던 바가 삶에 녹아져 있어서, 그것이 주장되거나 설득되지 않아도 동의가 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따라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규칙이라 할 필요 없이 “이렇게 사는 게 어때”하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그간 삶으로 켜켜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까지 7년 동안 유지되고 이어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자_ 다시 공통 질문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자주 자유인문캠프를 통해 여러 청년 단위들 만나면 청년 시기 이후(혹은 대학 졸업 이후) 어떻게 지속시켜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듣게 됩니다. 저희 스스로도 그런 고민들을 하는 친구들이 있구요.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여기 계신 세 단위들도 말씀을 들어보면 젊은 주체들을 많이 만나는 걸로 아는데요. 여러분들께서는 각자 활동하는 영역에서 청년 운동 지형을 어떤지 평가하고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사실 저는 이 질문에 답변을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청년운동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사실 모르구요. 아까 데이비드 하비, 맑스 막 나오는데, 아 씨 저는 고졸이거든요. (웃음) 그래서 그런 걸 전혀 몰라요. 그냥 저는 같이 사는 친구들 중에 여러 가지 투쟁 현장이나 이런 곳들에 가는 친구들이 많은데, 들었을 때 납득이 되고 문제라고 생각하면 달려가서 힘 싣는 거고, 빈고 돈이 있으니까 지구분담금 집행하자 이렇게 되는 거지. 사실 청년운동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기 때문에 평가를 하거나 판단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 대답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사회자_ 아니면 개별적으로 해방촌 공동체에서 만난 청년 주체들이 가진 고민이나 그런 부분을 말씀해주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굉장히 천차만별인데요. 어떤 친구들은 자기를 엄청 드러내지 않고 자기가 드러나는 거 자체를 엄청 꺼려서 수많은 이름을 쓰고 있고 자기가 뭘 꾸려도 이 사람이 기획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뒤로 빠지는 사람들도 되게 많아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 권력의 문제, 자본의 문제, 국가의 문제 이런 모든 것들, 먹는 것의 문제 삶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서 그걸 녹여서 사는 친구들이에요. 무조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거나, 밥을 먹을 때 그냥 채식이 아니라 이게 어디서 생산되고 이런 거까지도 보는 친구들도 있어요.
또 빈집에는 제가 우파도 있다고 했잖아요.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다. 새누리당에서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서 지지하고 이러는 사람들도 있어서, 저희를 계속 당혹하게 만드는 친구들도 있을 만큼 이슈들이 제각각이에요.
저의 이슈를 얘기하자면, 어쨌든 저도 직장을 그만두고 활동을 제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지속할 수 있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를 고민하는 입장이에요. 예를 들어 결혼을 한다고 해서 고민이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짝궁이 생기더라도 어떻게 할지. 내가 지향하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조금씩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 맺기를 하면서도, 찌질하거나 초라하지 않게 잘 살 수 있을까는 저를 비롯해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의 계속되는 고민인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의료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취직하지 않고도 빈고 활동들을 지속하게 하기 위한 기반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그리고 도시 안에서의 주거비가 오르는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런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하고 있구요. 옆에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실천하는데 많은 힘을 얻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제가 답변을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사회자_ 새움 같은 경우에 생활인부터 학생들, 청년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서 같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비슷한 측면에서 어떻게 좀 판단하고 계신가요?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먼저 하나 전제를 할 것은 새움이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아닌 거 같아요. 저 개인 주현우라는 사람이, 새움의 회원으로서 판단하는 지점이 있다고 하면 있다고 할 수 있구요. 새움에서 무슨 방침을 세운다거나 이런 식의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새움의 의견으로 묶이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간사를 하면서 방금 전에 얘기하셨던 부분을 많이 느꼈어요. 간사를 하다보면 굉장히 다양한 배경의 분들이 오세요. 실질적으로 대학을 안 다니신 분들도 오시고, 대학을 다니는 분들도 계시고, 현재 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고, 한참 생활을 하시다가 막바지 정년퇴임쯤 오셔서 결합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나이대로 치면 10대에서 50대까지 한 세미나에 있는데요. 그렇게 세미나를 굴리다보면 이런 저런 고민들을 다 같이 듣게 됩니다.
예를 들어 50대 직장인분들께서는 자녀분이 조금 있음 수능인데 빌어먹을 놈의 수능 이런 식의 얘기를 하시며 나름의 기성세대의 고민들을 하신다면. 한편으로는 10대 분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진학 또는 삶을 설계해야할까, 20대 입장에서는 이번 생이 어느 순간부터 망한 거 같은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물음들을 가지고 있어요. 이처럼 다종다양의 부분들이 있는데요.
청년 운동의 현재 상황이라고 한다면 뭔가 제대로 손뼉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세미나를 하면서 얻은 단초인데요. 왜냐면 나이가 드시고 이제 생활을 이미 하고 계신 분들은 세미나를 오실 때 그 세미나 시간은 생활의 일부분을 할애를 해서 만들어내는 영역이에요. 그러니 그분들은 세미나를 통해서 생각이 트이고 방향이 트여서 스스로 뭔가를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거기에 대해서 대단히 적극적이에요. 물론 그것은 자기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이지만. 한편으로 아직 생활을 시작하지 않은 청년들은 생활을 시작한다는 거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요. ‘내가 이거를 선택한 순간 어떻게 되지?’라는 고민이 일단 큰데요. 이 양자가 어떻게 보면 양 극단에서 있는 거죠.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됐다거나, 아니 생활이 있는 분들은 활동에 있어서 그럼에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를 고민하신다면, 청년들은 선택하는 거 자체에 두려움이 커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더라도 시야가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저도 그렇고 새움도 그렇고 전반적인 기조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방식들의 시도들을 많이 하자는 거에요. 예컨대, 제가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 중에 교지나 독립언론을 해서 언론을 지망하는 분이 많은데요. 지금 당장은 내가 학교에서 기자를 하며 기사도 쓰고 할 수 있는 이야기도 하지만 정말 밥 먹고 사는 기자가 됐을 때 내가 그럴 수 있을까? 본인들이 듣기에 선배들의 상황을 보면, 언론계가 녹록하지 않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가지고 버틸 수 있을지 물음들이 있어요. 저희라고 해서 만병통치약처럼 처방이 이렇게 있어서 이렇게 나왔습니다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같은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을 엮는 일이 사실 새움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또 예를 들면, 어제 새움 프라임이라는 대학생 모임들을 새로 꾸렸는데요. 참가자들의 학교들이 확인된, 그러니까 본인이 본인의 소속 학교를 발언하신 분을 보면, 확인한 바로는 여덟 개 학교에서 오셨어요. 근데 여덟개 학교에서 와르르와르르 뭉쳐서 오신 게 아니라 파편적으로 오신 거에요. 그분들이 항상 하시는 얘기가 뭐냐면, 자기 학교에서는 이런 얘기하는 공간이 없다는 거에요. 바꿔 얘기하면 없으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그러면 있는 사람이라도 그 틀로 묶어내는 방식이 일단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아닌 거 같다고 안하는 게 아니라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숨을 좀 길게 쉬면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게 새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새움은 국가나 자본이 독점적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하는 걸 막고, 자생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자는 취지에서 청년 운동을 해오고 있고, 가능성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가능성이라는 것이 실효성이 있느냐라는 부분은 다르게 봐야할 부분이겠지만, 그렇게 대응을 하고 있어요.

사회자_ 리슨투더시티도 두리반 같은 곳에서 청년 주체와 함께 활동을 많이 해왔는데요. 그런 면에서 답변 부탁드립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우선 청년이 언제까지가 청년이죠? “청년,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 제목 때문에 저희 페이스북에 홍보를 못 했어요. 우선 청년이라는 것도 운동이라는 것도 규정하는 게 되게 위험하거든요.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제가 지금 35살입니다 사실. (웃음) 저는 청년이냐? 물어보면 저는 청년일까요? 이게 20대 때는 청년운동이라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청년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정말 생각을 해봐야 하는 거 같아요. 자칫 잘못하면 그냥 20대 세대 담론으로 밖에 안 가잖아요. 그럼 정말 피상적이죠. 그러면 마흔살 되면 운동 그만할 껀가요? 저기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에서도 저기 오셨는데. 마흔 살되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름을 중년 혹은 장년 네트워크로 바꿔야하나요? (웃음)
이렇게 “청년”을 붙이는 건 사실 되게 구릴 수도 있고 위험한 프레임이에요. 세대론으로 가는 것은 경계를 많이 해야 되는 거 같아요. 왜 청년인지 분명해야하는 거죠. 농촌에서는 60살이 청년회 회장이에요. 마흔 정도 사람은 아주 베이비죠. 존재 자체가 생성되지 않은. 저기 마흔 살 농부가 한 분 오셨는데. 농촌에서는 귀요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웃음)
제가 논평을 할 수 없지만. 두리반이나 마리의 경험들이 되게 주요했어요. 그리고 두물머리에서의 경험들이 중요했는데. 저희가 점거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바로 그런 점거 공간들을 통해서 자치가 시작됐다는 점이에요. 빈집을 초기 세팅했던 친구들도 잘 알고 있는데, 이런 친구들도 치열하게 공통 공간, 공공성, 그리고 작은 곳에서도 꼬뮨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치열하게 질문을 했어요. 이런 친구들이 잘 퍼져나갔다고 생각해요. 자립음악생산조합도 좋은 예이구요.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도 열심히 하는데, 요즘은 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나? 소식이 좀 뜸하네요.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활동가_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파이팅. 기대할게요. 그다음에 사회당이나 진보신당이 해체되면서 당으로서 운동을 하려던 친구들이 약간 애매해졌는데, 알바연대 같은 곳을 통해서 운동을 하는 친구들도 있고, 대학 안에서 하는 친구들도 있고 공룡도 되게 열심히 잘 하고 계신 거 같고. 수유너머는 청년들이랑 중년들이랑 장년이 좀 섞여있는데, 저도 이제 수유너머 회원이 된 지 5년이 넘었는데요. 수유너머가 R도 있고 N도 있고 청년 운동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공동체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더 할 말이 길지만 여기까지 하고, 근데 하나만 더 얘기 하면 두리반을 하고 나서 우리가 마리에 간 이유는 딱 한가지였어요. 두리반에서는 우리가 절대 주체가 될 수 없었어요. 애들이고 특히 저 같은 경우에는 여자잖아요. 4대강 현장에서도, 만약 지율 스님이랑 저랑 남자분이 같이 가잖아요? 그러면 관계자 아저씨가 저한테만 시비를 걸어요. ‘왜 사진 찍느냐’고. 셋이 같이 찍었는데도 말이에요. 우리나라에 아주 뿌리 깊은 게 여자 사람인데 어려. 그러면 사람이 아니에요. 난 35살인데 언제쯤 어른이 될지 되게 궁금해요. 애를 한 셋을 낳아야지 어른 취급을 받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드는데요. 어떻게 해야지 주체가 될 수 있는지 고민이 많이 들어요.
청년이라는 게 되게 불편한 게 뭐냐면 기존의 운동이 있고 우리는 청년이라 너희들과 다르다고 말로는 끊는데, 하는 행태나 매커니즘은 똑같이 가는 거에요. 매커니즘도 다르게 하면서 청년 운동이라고 부르던지. 중요한 것은 청년들이 보통 문제의식을 하나를 가지고 쭉 가는 경우보다 아무래도 에고 트립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요. 현장마다 메뚜기라고 하죠. ‘강정이 터졌으니까 강정을 가자. 와-!’ ‘이번엔 밀양이 터졌으니까 밀양에 할머니들을 구하러 가야지. 와-!’ ‘이번엔 내성천을 가볼까?’ 이런 식으로. 물론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몸으로 막아주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이게 지속적으로 될 수는 없는 거에요. 금세 지치고 떨어져나가는 거죠. 밀양 가면 밀양의 친구들은 또 강정의 친구들이고. 강정의 친구들도 다 아는 애들이고. 결국에는 한 50명밖에 안 남는데, 그 친구들이 다 알고 보면 다 빈집출신이야. (웃음) 저희도 이 행사를 홍보 안 한 게 청년 운동이 지리멸렬한 거에요. 너무 조금이니까. 지리멸렬한데 이런 고민을 어떻게 각자가 나눌 수 있을까요?
청년. 저도 대학교에서 강의하는데 너무 수동적이에요. 그러니까 뭔가 판이 만들어지면은 그때 가서 밥숟갈을 놓고 싶어 하지 자기들이 초기 세팅은 절대 하기 싫어해요. 왜냐하면 리스크를 다 받아야하고 잘 안되면 자기가 다 뒤집어쓰니까. 그거 왜 해? 하면서 초기 세팅들을 안 하면서 뭔가 판이 생기면 되게 참가를 하고 싶어해요. 그래서 참가 욕구들은 세졌지만 판은 아무도 안 만드는. 신기한 공동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이 청년 운동의 지형이 아닌가요? 라고 생각합니다. 격분을 했네요.

사회자_ 뒤이은 얘기는 전체 토론에서 함께 얘기 나누면 좋을 듯합니다. 그 전에 다들 단편적으로 얘기를 하셨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짧게 각자 단위에서 활동의 자립, 운동의 지속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 규칙, 지향에 대해서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네요.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마지막 정리라고 해야 될까요? 사실 저도 행사가 ‘청년,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이라고 해서 청년 운동이라 말했지만. 저 역시 새움 활동을 청년 운동이라기보다 사회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새움 역시도 사회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활동 할 수밖에 없고 사실 그렇게 활동하고 있어요. 계속. 어쩔 수 없죠.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저희가 지향하는 대중이라고 하는 공간이 물론 파고들고 들어가면 여러 가지 섹터들이 있고 여러 개의 분절점들이 있겠지만, 어쨌든 저희가 지향하고 있는 진보적 지식의 대중화라는 게 핵심적인 키워드이기 때문에 그걸 어떤 식으로 전달할지에 대해서 그 분절적인 부분들을 고려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치고 들어간다는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새움 프라임이 됐든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가 됐든, 저희는 자기 스스로 주도적으로 자신이 정의하는 주체라는 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학생이고, 내가 활동하는 공간은 대학이고, 저녁 때 7시 반 넘어가면 집에 들어갈지 아니면 술을 한 잔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 어느 지역에 사는 누구라는 거. 특히나 저희는 사실 지역 쪽에서 활발한 연대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대구 같은 경우에는 2년 정도 꾸준히 세미나를 한 결과 지금 한 36주 40주 짜리 장기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요. 그 자체로 대구 내의 새로운 새움을 만들어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바꿔 얘기하면 여기 활동가가 저기 가서 뭔가를 하향식으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하는 교육 속에서 자체적인 활동가들이 생성되어서 그 자체 공간에서 나름대로 새움적 방식으로 한다는 거, 그런 방식의 공간 중심적인 활동들을 퍼뜨려나가는 게 핵심이기 때문에 그런 방향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려고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사실상 가능성들을 실낱같은 희망이 되었던 뭐건 간에 그런 방식들의 관여를 계속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리슨투더시티에서 사람들이 처음에 시작하기를 두려워한다는 부분을 많이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런 부분을 작년 말에 되게 많이 느꼈었어요.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뭔가 해보고 싶고 관계하고 싶고 뭔가를 하고 싶지만. ‘뭔가 계기가 있어야 한다’라는 식의 전제가 깔려있는 경우가 일반적인 거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저희는 뭐랄까. 새움적 방식을 계속 고수하는 고집이 계속 있어왔고, 그런 방식으로 공간에서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지루할 수 있겠지만 설득하고 이야기하고 학습하는 가장 기본적인 걸 바탕으로 뭔가를 해나가려고 하는 게 있습니다. 이 정도가 제가 오늘 드릴 수 있는 말입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네, 저희 스스로도 묻고 싶은 질문인데요. 일단은 빈집이 계속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문턱이 없었다는 게 단 하나의 요인인 거 같아요. 저같이 운동이 뭔지 활동이 뭔지 전혀 모르던 사람들도 지금 와서 자본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빈집에 문턱이 없었다는 거에요. 그리고 활동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내 옆에 존재한다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요인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보고 관계 맺기를 어떻게 할 것이냐가 요즘 저의 빈집 생활의 화두인데요. 알게 모르게 저도 백수생활을 하며 빈집친구들하고 지내면서 일적으로 만나는 거에 익숙해지다보니 내가 관계 맺기를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제가 기존의 빈집친구들에게 받았던 정의내릴 수 없었던 감명에는, 활동을 같이 하기 위해서나 또는 이걸 같이 성취하기 위해 관계 맺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한 무엇인가가 있었거든요. 우리가 함께 뭔가를 하자고 내세울 때는, 정말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서 시간과 자원을 내어서 할 수 있는 관계망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 사람이 옆에서 뭔가를 실수하거나 잘못을 했을 때도 그것을 평가하거나 배제하는 게 아니라 문제점을 서로 이야기 할 수 있으되 끈을 놓지 않고 관계 맺는 것, 이런 것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를 결심하고, 그걸 하려고 할 때, 힘을 모아줄 수 있는 중요한. 근간이자, 우리가 자립할 수 있게끔 하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까 청년들에 대한 정의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대학생들이. 지금 사회에 진입해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데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부분들에 있어서 고민이 된다고 하셨는데요.저는 고민이라는 것은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을 때, 고민이 고민으로만 뺑뺑 돈다고 생각해요. 근데 내가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해지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주체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충분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거 같거든요. 빈집 안에는 가진 게 빚 밖에 없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도 안 되는 사람들도 많고, 적정한 임금 생활을 하기에는 심리상태가 불안정한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데 같이 살고 있거든요. 그런 관계망들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우리가 서로 끈끈하게 이어질 것인지가 운동의 지속에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글쎄요. 멤버를 많이 키우지 않는 게 중요하구요. 그다음에 지향점을 너무 똑바르게 멋있게 잡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을 빼려고 하는데, 너무 힘을 주면 조금만 잘못돼도 굴욕이라, 조심을 하는 게 있고 그 다음에… (누군가 컵을 깨뜨림) 빨리 끝내라고 하시네요. (웃음) 전체 토론을 하면서 더 정리를 하겠습니다. 토론하며 물을 많이 마셨더니 화장실에 가고 싶네요. (웃음)


*2부 전체 토론

사회자_ 편하게 질문 해주시면 좀 더 풍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질문 하실 분 있으신가요?

(일동 침묵)

사회자_ 건배를 한 번 해야 하나요?

(일동 웃음)

질문자 1_ 저는 휴학생인데, 주현우씨한테. 첫 질문이니까 가벼운 걸로 할게요. 페이스 북을 보면 학생운동을 하는 지역구나 전국구 단위의 학생단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개별단위는 없는 것 같아요. 조직적으로 공통분모를 만들 수 없는 실정이고, 학교별로 소식을 말하는 수준이지 전부를 아울러서 대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이런 점에서 전체를 아우르는 진보적 학생 공동체 단위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만드세요.

(일동 웃음)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아니, 저도 이런 질문 되게 많이 들었는데, 그럼 자기가 만들면 되잖아요. “4대강 지키자,” 이러면 본인이 지키면 되잖아요. “강이 무너지니 가슴 아파요.” “거기 가보셨어요?” 물으면 “아, 아니요” 이러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못가겠대. (일동 웃음) 그게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요. (웃음) 필요 사항을 느끼면, 본인이 하면 되죠. 남한테 미루면 못하는 거고.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네, 뭐 작년부터 계속 들었던 질문인 것 같아요. 그놈의 대자보를 써가지고. 하여튼 (웃음) 근데 그것도 제 입장도 똑같은 거거든요. 말을 하고 싶어서 한 거고,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 만들자, 해서 만들어본 거고, 페이지도 그렇게 해서 만든 거고. 그러면서 계속 든 생각은, 결국에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생각을 좀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왜냐면 사실 전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주위 사람들도 옛날에 하던 말이나 지금 하는 말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그런 계기가 있어서 제 스피커가 커진 것처럼 보이는 거에요. 거기에 집중하기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한다는 것. 일단 그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단 ‘하는 게’ 중요하죠.

사회자_ 또 다른 이야기 있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리슨투더시티에게, 사전 인터뷰에서 들었던 것 중에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누차 강조해주셨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좀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기록의 중요성? 기록을 잘 해야죠. 네. 우리 조선 땅이 되게 할 일이 많잖아요. 너무 바쁘고. 너무 비상식적이고. 그런데 하여튼 예를 들어, 제가 말하는 건 기본적으로 다들 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걸 전제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만약 어떤 현장이 있다면 거기 그냥 우루루 갔다가 우루루 메뚜기처럼 옮겨가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세월호가 있은 후에 밀양에 지금 아무도 안가는 거에요. 밀양은 지금 아무도 케어를 안 하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한 곳에서의 운동은 어떻게 끌고나가는지에 대한 책임이 되게 필요한데, 책임을 지는 것 중 하나는 기록이나 역사의 형태로 만드는 거죠. 대안 역사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역사라는 게 힘 있는 자가 만드는 거잖아요. ‘히스토리’라는 게.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언어를 선취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지금 운동이 거의 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상황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 하나가, 우리가 모든 중요한 ‘언어’를 다 빼앗겼다는 거죠. 대운하 건설을 4대강 ‘살리기’라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큰 반발이 없구요, ‘복원’이라는 말을 굉장히 오용, 남용하는데 그걸 바로잡지 못했죠. 그렇기에 언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언어’를 어떻게 남기고 지속해야할지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지속을 하고 반복이 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기록해야하는지를 많이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 뒤에 보면 마침 제가 그린 버드나무 네 종류가 있는데 (리슨투더시티가 제작한 내성천 버드나무 포스터를 가르키며) 저것들이 4대강 살리기 이후 거의 전멸했어요. 내성천에도 되게 많은데 지금 위기에 처해있고. 저번 주에 하류에 가보니 많이 죽었더라구요. 기록을 남겨야 나중에 복원을 할 거 아니에요. 이런 과정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질문자2_ 제가 자유인문캠프에 질문 드리고 싶었던 건, 여기서 기획하실 때 생각하셨던 ‘지속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고졸인데 청소년 인권활동 이런 걸 하면서 대학을 안 가게 됐어요. 대학 거부라고 생각하고 안갔던 거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여기 자유인문캠프는 대학생들도 많다고 들어서 그런 진 몰라도. 학내 운동 같은걸 말씀하시는 건지 좀 더 폭넓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다 뽑아서 말씀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사회자_ 저희가 생각하는 것은, 대학 안과 밖, 두 개가 뚜렷이 나뉘어져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대학에서, 세미나나 학습을 통해서 청년들이 주체적 자립을 할 수 있는 게 가능했던 공간이었어요. 그런데 (중앙대 경우) 두산이 재단을 인수한 것도 있지만, 2000년대 이후 대학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학위를 나눠주고, 학벌이 재생산되는 곳으로만 전락한 게 있잖아요. 아까 세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결국 우리가 언젠가 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고 보아요. 대학이라는 공간이 한편으로는 잘 작동했던 순간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다시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 교육 문제에 계속 천착하고 싶었던 거에요.
저희 내부에서도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들었던 고민이 질문하신 것과 비슷한 거였어요. 2010년에 처음 시작했을 땐 거의 다 학부생, 대학원생이었는데 이제 햇수로 5년이 지났고, 그 때 학부생이었던 사람은 지금 대학원생이거나 졸업을 했고, 대학원생이었던 사람은 논문을 썼거나 쓰려고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 이 활동들을 어떤 위치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계속 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는거죠. 그래서 오늘 이 라운드 테이블을 만들었습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여기 뒤에 보면 청년가방 콘서트도 있잖아요. 두리반이나 마리에 있던 친구들 중에 탈교 학생들도 많았어요, 가출해서 엄마 아빠들이 마리, 두리반에 와서 머리 끄댕이 잡고, “내 딸 내놔라”했던 적도 많았어요. 그 때 열일곱, 열여덟이었던 학생들이 이제 이십대 초반이 되었어요. 제 경우는, 그 친구들 처음에 알았을 때 이미 대학을 졸업해서, 다른 대학에 수업도 나가고 있어서 ‘탈교’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게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지금 대학이 되게 거지 같잖아요. 사실 사람 만나러 가는 거긴 한데. 대학등록금 투쟁이 한창일 때, 제가 수업 중에 “여러분들 이게 말이 되요? 나가서 등록금 투쟁이나 하세요”라고 말했다가, 어떤 학생이 꼰질러 가지고 짤리고. 그런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일동 웃음) 잡기만 해봐 (웃음) 그리고 또 한 반에 꼭 한 명은 일베하는 친구가 있어요. 힘든 일이 많죠. 학교와 대학의 문제 같은 경우는 사실 힘든데. 지금 뒤에 탈교와 관련된 한 선생님이 앉아 계신데, 나중에 한 마디 첨언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나름대로 고민을 해봤는데, 그때 마리와 두리반에서 탈교를 하고 대학 안가기로 한 친구들 중에서, 지금 다시 대학에 간 친구들도 많아요. 저는 그때 그 친구들이 합리적이고 용기도 있고 해서 좋았는데요. 어떤 주체로 자립하기에, 사람들이 대학을 안 나왔기 때문에 신뢰하지 않은 것들에 되게 깜짝 놀랐어요. 사실 대학을 나오고 안 나오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탈교운동 하는 친구들 중에 기득권이라는 말을 되게 많이 쓰는데, 그런 고민은 해봐야 해요. ‘대학을 가면 자동적으로 기득권이 되는 건가?’라는 고민.
그 친구들이 이제 와서 대학을 갈 수 밖에 없었던 것 중 하나는, 대학에 안 가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도 되지 못 하게 하는 사회 시스템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지율 스님과 같이 내성천에서 활동을 하는데요, 지율 스님이 하는 말이. 자신이 천성산 투쟁을 할 때 만약 내가 대학을 나왔으면 이렇게까지 나를 무시하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고 그러는 거예요. 조선일보에서 “중년”이라고 부르고 그랬어요 사람을 전혀 존중하질 않는거죠. 저 같은 경우에도 4대강 운동을 하는데, 대학에서 미술 전공을 했기 때문에 생태에서 비전문가로 취급받아요. 하지만, 강에 4년 넘게 다녔고 누구보다 내성천을 잘 알아요. 그런데, 지율 스님이나 제가 쓴 글들은 하나도 레퍼런스가 안 돼요. 그냥 구전인거야. 거의. 그러니까 저희가 생산한 정보들은 공식적인 정보들이 아닌 거에요. 그래서 그냥 카피 앤 페이스트하는 데에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거에요. ‘내성천 모래강길’ 이런 말도 되게 고민하면서 만들었는데 그런 것들을 아무런 가책 없이 ‘내성천 모래물길’ 이라고 쓴다든지. ‘모래가 흐르는 강’이란 말을 ‘모래가 구르는 강’ 이런 식으로 모사품을 만들어내는데, 이런 걸 보고 보면서 좀 화가 많이 났어요. ‘이런 게 학벌주의구나’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생산한 정보는 레퍼런스가 되지 않는 상황. 이런 게 큰 문제에요.
대학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사유해야하는지 저도 사실 잘 모르겠는데. 대학 안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담론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외에서도 그 담론을 충분히 만들어 내어야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정보도 그런 ‘정보’가 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겠죠. 그리고 탈교 친구들을, 전부 퉁쳐서 이야기해선 안 되는데, 한 두 친구들은 “운동을 하려면 반드시 탈교를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말했던 친구들도 사실 있는데, 그것도 다 그런 게 아니잖아요. 청년 운동을 대학 안에서만 하는 것도 큰 문제 같아요. ‘우리 학교는 운동이 잘 된다’라든지. 그런 건 운동을 협소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최철웅(자유인문캠프 기획단)_ 질문에 대한 답을 덧붙이자면, 저 슬로건(청년, 운동을 지속한다는 것)은 제가 제안했던 건데, ‘청년운동’이라기 보단 청년 그리고 콤마 운동이구요. 사실 청년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규정은 아니었고, 그 운동의 주체가 ‘청년’이다 정도인 거구요. 생물학적으로 굳이 뭐 40대 밑으로 제한한다거나 그럴 수 있겠지만 (웃음)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크게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청년’이라 생각해서. ‘학생’이라는 건 너무 제한되고. ‘20대’라고 하면, 또 떨어져 나가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일동 웃음) ‘청년’이라는 말을 요즘 좀 넓게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운동’이라는 것도 활동이라는 의미로서 좀 넓게 포괄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처음 기획할 때 사실 중요하게 생각한건 ‘지속성’이었거든요. 여기저기서 지금 다양한 운동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지만 중요한 건 이 ‘지속성’이라는 관점에서 지금까지의 운동들을 평가해보는 건 어떨까 해서.
지금 나온 패널 분들이 속한 단위들도 기본적으로 5년 이상 해왔던 단위들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영역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 공동체 운동일수도, 학술 운동일수도, 예술적 실천에서의 운동일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 현존하는 지배적인 시스템에서 대안적 가치, 형태를 추구하는 것을 모두 운동이라고 봤을 때 이게 다 연결되는 거죠. 지속성의 관점에서 운동을 보면, 한 편으로는 크게 빵 터뜨리고 이슈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도록 지속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사실 대부분 활동하는 단위들이 고민하는 것 역시 ‘이 운동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가‘잖아요. 물질적인 부분도 그렇지만, 구성원을을 재생산하면서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처음에 그 운동을 띄웠을 때의 가치와 문제의식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실질적인 운동의 노하우를 배우려 했던 거거든요.
자유인문캠프는 ‘대학 기업화’, ‘구조조정’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교육, 학술, 예술, 문화운동 전반에 대해서 대학 내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식으로 시작했는데, 처음 기획단들끼리 이야기했던 게 ‘10년을 해보자’ 이거였어요. 지금 대학 내에서 하는 운동 중에 ‘10년을 유지하자’고 하는, 그런 전망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다들 1, 2학년까지 하다가 3학년 올라가면 다른 일들을 하려하고 그런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에 운동이 확장이 안 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20년으로 늘렸어요. (웃음) 이제 한 5년이 지났는데, 10년이 금방인 거 같아서요. 벌써부터 ‘이제 10년이 지나면 뭘 할까’ 그런 고민이 들어서, 아예 20년으로 늘렸어요.어찌되었건 앞으로 여러 가지 선택의 길을 고려하는데. 그런 점에서 세 단위가 생각하는 운동의 지속성, 노하우 등을 듣고 싶었어요. 자유인문캠프도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거든요.

질문자 3_ 여기에 좀 더 보태서 질문을 해보려 해요. 저는 대학언론협동조합을 하고 있어요. 작년에 이걸 하려고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지금 살고 있고요. 작년까지는 학보사들 지원하는 단체로 있다가 지금은 독립 언론을 지원하는 단체로 목표를 바꿔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광고영업을 대행하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외대 알리, 연세통 두 매체의 광고일을 대신하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조금 받고,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내년에는 좀 더 매체를 늘려서 더 크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주변에서는 “멋있다”, “훌륭한 일 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들어요. 안 그래도 저번 주에 라면 다섯 개 짜리 하나 사는데 카드 한도 초과 떠서 못 샀어요. (웃음) 저번 달에는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간호하고 이러니까, 몸도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요즘 들어 이런 식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게 느껴질 때, 어떻게 이걸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끌고나갈 수 있는지. 존나게 버티는 방법에 대해 여쭤보려구요.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뭐라고 해야 할지. 새움 같은 경우는 아까 운영위원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운영위원이라고 위촉하는 경우는 없지만 항상 나오는 사람들이 있죠. 단골처럼. 그 고정멤버가 다섯이 있어요. 그게 매년 있는 건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 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지속 가능’과 ‘현상 유지’를 동일한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상 유지’를 버리면, ‘지속 가능’이 된다고 봐요. 바꿔 이야기해서 때에 따라서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는데, 그것에 일일이 연연해하기 시작하면 위험한 거죠. 예를 들어, 이때까지 논문 안 쓰고 땡땡이 쳤는데 이제 써야지 하는 상황인데,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아’해서 활동하다가 생활도 꼬이고 뭐도 꼬이고 이런 경우를 저희는 가장 경계하거든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운동을 하면서 이런 형태의 활동을 하는 거지. 이게 당신의 운명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목표가 명확한 게 중요한 거지. 사실 대학 안/대학 밖, 청년/비청년 그 구분은 잘 모르겠어요.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느냐에 대한 고민지점에서 자꾸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변해갔던 것 같아요. 뭔가 질러볼 수 있었던 지점에서 사회 구조적으로 파편화되는 것과 맞물려서 점점 더 지금 유지 불가능한 수준까지 왔기 때문에 문제인 건데,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길게 갖자는 거죠. 아까부터 계속 장기적인 안목을 갖자는 게, 정말 생활이 안 되는 사람에게 운동을 강조하면 그건 조직이 아니죠 사실. 그러니까 헌신만을 강조하는 건데. 그러면 그런 헌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차라리 설명하든가. 아니면 헌신만큼을 보상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마련하든가. 새움 경우는 전업활동가에 대한 그런 보상이 없어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후원회원들이 마련해준 후원금으로 월세도 내고 있고. 그래서 항상 이제 빚을 안고 사는데요. 그래서 저희는 생각을 바꿨죠. 빚은 기본적으로 끼고 가는 거다. 어쩔 수 없는 거고, 넘어가면서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 방식으로. 이렇게 10년을 버텼거든요. 근데 10년을 버티다 보니까 재밌는 게, 10년 운동하신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옛날에는 그런 거 한다 그러면, “아 쟤가 몇 년 가겠나?” 했대요. 그런데 이제 10년차가 되니까, “그래, 아직까지 버티고 있구나” 이러시는 거에요. 오히려 이제 저희는 “뭘 해볼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있어요. 사실 새움이 10년 동안 쌓은 건 다른 게 아니구요. 여러 차례 세미나를 열면서 경험을 쌓았어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경험하고 확장되고 수축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쌓았던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역과 공간에 끊임없이 또 다른 방식으로 그런 역할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을 찾고 만나고 확대해나가는 과정.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경우에 따라서 삶이 힘들고 핍박이 오면, 당연이 믿고 자신이 쉴 수 있는 그런 조직 구성을 해요.
사실 자발성에 책임이 붙는다고 말한 게 사실 그런 부분이거든요. 책임이라는 게 “나 아니면 죽는다” 이런 게 아니라, 그 책임의 영역은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해요. 그 이상을 하겠다면 그건 뭐 자유죠. 그런 분들도 간혹 몇분 계세요. 그런데 모두가 다 그런걸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고. 특히나 저도 개인적으로, 제가 졸업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데. 저는 독립해서 생활한 지 좀 돼서 이런 저런 비용 들어가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때가 많은데. 또 그럴 때는 쉬기도 해요. 요즘 상황이 쉽지가 않아서 생활을 좀 해야겠다, 하면 거기에 대해서 도와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걸 제안하기도 하구요. 아까 말한 그 가능성을 연다는 게, 활동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생활의 가능성이기도 해요. 단순하게 돈을 준다는 게 아니라, “아 요 주변에 보니까 요런 일자리가 있고, 이런 단기 일자리가 있던데 좀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사소하게는 그런 부분들도 삶을 버텨가는 방식인 것 같아요. 물론 정도는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부분을 해나가는 방식에서, 생각을 조금 더 길게 길게 보는 방식으로 하다보면, 항상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런 방식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저희는 버텼던 거 같아요.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현상 유지’하려는 생각을 버리면, ‘지속 가능’하다. 좀 더 유연하게 사고를 가졌으면. 활동의 유연성을 가지는 게 좀 더 좋지 않을까요?

사회자_ 빈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일단 빈고조합원 가입을 권유 드립니다 (웃음) 자세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일동 웃음) 사실 그런 개인들이 안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공동의 자본으로 만들어서 같이 기다려줄 것인가가 필요해요. 아까 빚을 얘기하셨는데 정말 똑똑한 분들은 빚 만들기 되게 잘 하시더라구요. 제 친구가 현대캐피탈에서 일하고 있어서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정말 돈이 있고, 돈을 굴릴 줄 아는 분들은 빚 갚는 사람 아무도 없대요. 오히려 가난한 서민들이 일일이 갚으신다고. (일동 웃음)
그리고 빈고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그리고 빈마을에 살면서 저 역시 활동의 지속 부분을 고민해요. 그런데 옆에 꾸준하게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했던 게 있었었구요. 5년 동안 빈고 활동을 하며, 엄청 욕먹는 일도 되게 많았었고 같이 무엇인가를 합의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네가 이걸 이용하려고 하는 건 아니냐?”라는 식의 음해의 목소리도 들은 적도 있고. 같이 벗으로서 동지로서 같이 가겠다고 했던 사람들에게서도 핍박을 받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봤을 때는 당위성보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게 훨씬 컸고, 그게 재미있으니까 일상의 곳곳에 그것들을 같이 공부하고 고민 할 수 있는 기제들을 많이 만들게 되더라구요. 제가 직장을 다닐 때, 정말 그만두고 싶었던 게 빈집에서 재미있는 걸 너무 많이 하는 거에요! 어느 날에는 1박 2일 책읽기 모임을 하고, 아침 9시에 못 일어나니까 서로 책읽기 모임을 하자는데, 나는 그 시간 회사에 가야 되고 출근해야 되는데, 세미나 끝나면 아침까지 같이 술 마시면서 그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고. 곳곳에 삶의 재미있는 장치들을, 가치들을 논의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들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 놓았던 친구들 덕분에 제가 코가 꿰이고 이 친구도 코가 꿰이고 옆에 있던 다른 친구들도 코가 꿰이고 다들 일을 그만두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아까 중요하게 말씀해주신 거처럼 그냥 하는 거! 덧붙여서 그게 당위성이 되거나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는 순간 기운이 더 쪽 빠지는 거 같거든요. 물론 재미만 바라보다보면 그걸 지속하긴 어렵죠. 말씀하신 것처럼 판을 벌이고 그걸 지속하는 데에는 엄청난 책임감과 무게감과 힘이 들어가요. 하지만 그게 내 안의 동기가 되지 않고 책임으로만 됐을 때는 분명히 무너지게 돼요. 저도 원래는 내년에 빈집 친구들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살기로 결심을 했는데 지금 이 추세로는 내가 내려갈 수 있을 것인지, 빈고는 누가 맡아서 운영을 할 것인지 하는 고민을 굉장히 심각하게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결국 계속 빈집에서 살아야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웃음)
저는 한달에 30만원 정도를 벌고 있어요 그러면서 운이 좋으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40만원을 버는데 거기서 5만원씩 빈고 출자를 꾸준하게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제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노동할 거 하고, 놀러다닐 거 다니고, 연대할 곳 있으면 하나 정해서 계속 다니고 그러고 있거든요. 이게 가능한 건 (주현우에게) 아까 월세가 40 얼마라구요?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그렇죠.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저는 22만원이면 다 끝나거든요. (웃음) 이렇게 하면서 사실 직장 다닐 때는 분담금 따로 내고 밥은 밖에서 사먹고 그랬었어요. 삶의 패턴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빈집에서 다 해결해요. 빈집친구들이 훨씬 요리도 잘하고, 밖에서 먹으면 돈 나가는 게 눈에 보여서요. 오늘도 저는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요. 교통비 안 들려고 자전거 타고 다니고 그럴려고 더 건강하게 몸 관리하고 그리고 밥 먹을 거 집에서 같이 해먹고 제가 혼자 다 하는 게 아니라 같이 살면 다른 친구들이 해주는 거 얻어먹을 때가 훨씬 많고. 그러면 제 생활의 패턴에서 결국 수입이 줄어들어도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니까 그게 압박이 되지 않는 거 같아요. 결국은 그런 방법을 여럿이 함께 힘을 모으고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어쨌든 돈에 대한 문제는 두 가지인 거 같은데요. 하나는 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돈의 소스를 어디서 가져오는가이고 또 하나는 개인 활동가 혹은 활동가 스탠스를 갖고 있지만 스스로를 활동가로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돈 버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활동을 하려면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느냐에 문제인 거 같아요.
수유너머 같은 경우에는 되게 오래된 꼬뮨이잖아요. 미우나 고우나 오래됐는데. 욕을 많이 먹든 안 먹든 오래한건 사실이고,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세미나비 1만 5천원 오는 사람들한테 걷고 있고, 회원들이 5만원씩 내요. 정규직 10만원, 비정규직 5만원, 이런 식으로 멤버십을 가지면서 월세를 내거든요.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하는데, 조금 빚이 있긴 하지만 재정적으로 엄청 힘들지는 않는 거 같고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돈을 못 벌죠, 당연히 돈을 벌수가 없잖아요? 여러분들이 책을 사주신다면 모를까요? (앞에 놓인 책들을 가리키며) 오늘 특별하게 이 책을 15000원에 드릴게요. (일동 웃음) 농담이고, 10000원에 드릴 테니까, (『전환도시: 해킹더시티』 책을 집어 들며) 이건 점거에 관한 책이에요, 이렇게 외판원도 하면서, (『urban drawings 2』 책을 집어 들며) 이건 6000원이지만 4000원에, 근데 이거는 재고가 없고요. (『동대문디자인파크의 은폐된 역사와 스타건축가』 책을 집어 들며) 이건 15000원인데 그냥 15000원에. 이런 식으로 물건을 판다거나! 근데 이건 진짜 안 팔리거든요? 진짜 안 팔리고 이런 작업을 할 때는 텀블벅 등 크라우드 펀딩을 했었어요. 크라우드 펀딩이 예술이나 이런 작업으로는 가능한데 그냥 운동으로는 되게 안돼요. 소셜 펀치라는게 생겼는데 진짜 더럽게 돈이 안모여요. 정말 힘들고, 목표가 100만원인데 12만원 모이고 막 그러거든요.

최철웅(자유인문캠프 기획단)_ 자유인문캠프는 4만원 모았어요.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대단하시네요. (일동 웃음) 소셜 펀딩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예술이면 모를까. 왜냐하면 예술은 리워드를 주잖아요. 오늘도 갑자기 생각나는데 내성천 생태도감 빨리 완성해야하거든요. 고객님들한테 리워드 보내야 되가지구. 근데 그런 식으로 하는 방법도 있는데, 텀블벅 같은 건 좋은 거 같아요. 일본은 이런 사이트가 아예 없대요. 그러니까 만약에 프로젝트를 할 때 그런 시스템의 도움을 받거나, 그런 인프라를 이용하는 것도 필요한 거 같아요.
리슨투터시티 같은 경우에는 구성원이 네 명인데 생계가 큰 문제죠. 저 같은 경우에도 돈을 많이 안 쓰고 별로 안 벌고 그렇게 대충 살고 있는데, 대신 학교에 강의를 나가지만 방학 때는 강의가 없잖아요. 개놈의 새끼들이 왜 월급을 안주냐고. (일동 웃음) 진짜 웃기는 게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 활동하시는 김영곤 선생님이랑 김동애 선생님 계시잖아요. 그분들은 집중해서 열심히 하시잖아요. 계속 권유 하셔서 모 대학에 노조를 가입했는데 조합원이 저 하나밖에 없는 거에요. 강사가 몇 천 명이 넘는데. 그러니까 우리 사회는 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거 같아요.
돈 문제에서 전문가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이 주제로 돌아오면 다시 몹시 격정이 되는데요, 대학교수들 중에 4대강 문제에 대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줄 사람이 정말 한명이 없어요. 환경 쪽은 정말 더 없구요.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서 공부를 해야 되는 거에요, 드문드문. 정확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자립할 수밖에 없죠. 내성천 관련 소송도 지율 스님이 변호사에요. 스님이 직접 하세요. 아무도 믿을 수 있는 변호사가 없어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도 못 믿어요. 여기 민변 관계자들 있는 거 아니죠? (일동 웃음) 민변에 관련된 사람들이 5000명인가 3000명 정도 되는데요. 그 분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자발적 연대를 하시는데 개개인마다 수위가 너무 다르고, 그곳도 민주당이랑 너무 관련이 많아 사실은 독립적이라 보기 힘들죠.
그리고 대학 안에서도 대학강사 처우나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에도 정규직 문제와 고정적 수입 문제에 묶여가지고 누구도 발언을 강하게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강사노조에 가입을 했는데 바로 다음에 짜르더라구요. 뭐 어떡해요. 짤렸으니까 짤렸구나 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식으로 모든 먹고 사는 문제가 굉장히 힘든데, 사람들이 또 그러니까 되려 더 자기 검열이 너무 심해지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되든 안 되든 리슨투더시티같은 경우는 그냥 따로 벌어요, 각자가. 활동비 같은 건 없어요. 만약에 알바가 들어온다. 알바 100만원 짜리가 들어와요. 100만원에 웹자보 30개 만들라고 시키거든요. 죽여버리고 싶은데 (일동 웃음) 하여튼 100만원으로 세 명이서 나눠요. 33만원. 아니면 남은 돈으로 작업실 비용으로 쓴다든가 저희가 작업실이 있어서 45만원을 내야하는데 그거 때문에 미칠 거 같은 거에요. 45만원을. 버는 게 없는데 내야 되니까. 힘들구요. (일동 웃음)
여러 가지 생각해봤는데 우리가 하는 활동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순간부터 이상해지는 거 같아요. 예를 들어서 H운동연합이라고 합시다. 아니면 N연합? 누군지 전혀 모르겠죠, 여러분? 너무 추상적이어서 잘 모르실텐데요. 환경 운동에서 대표적으로 오래된 두 단체가 있는데 이분들이 초창기부터 못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환경재X? 거기는 심각한데 문제가 삼성 돈을 막 대놓고 받아요. 그러면 그걸 왜 하는지 모르겠거든요. 만약 그럴 수 있다고 쳐요. 기업 돈을 다른 곳에 좋게 환원한다고 쳐요. 그러면 삼성의 현장은 들어오지 말든가 왜 들어오냐구요. 운동도 안하면서 이름만 걸쳐놓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하여튼 이게 활동하는데 누군가 월급을 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망하는 거 같아요. 제가 알던 낙동강에 되게 잘 굴러가는 환경 단체가 있었는데 정말 자발적이고 되게 잘 굴러갔는데 상임 활동가를 두 명 뽑았어요. 그 순간부터 그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는 거에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상임활동가니까, 그렇게 되면 안주인이 되고, 운이 좋아서 그분들이 정말 잘하면 잘 굴러가는데 만약에 월급 받는 분들이 잘 못하잖아요? 그러면 그걸로 망하는 거에요. 그렇게 중심을 월급 90만원 받는 사람에게 돌아가게 할 것인지가 큰 문제에요. 지금 상임활동가 없이 하는 단체들은. 기본소득네트워크 상임활동가 같은 거 없잖아요?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활동가_ 없죠.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없는 게 사실은 나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만약에 누군가에게 월급을 주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망한다는 생각도 좀 들고, 아마 자캠 같은 경우에도 고민을 많이 하실 거 같아요. 보통 단체들이 “컵 설거지는 누가 할 것인가?” 보통 이걸로 다 깨지거든요. 수유너머도 제일 큰 문제가 뭐냐 하면 누군가가 컵을 안 씻고갔어, 이걸 누가 씻느냐 이거에요. 그럴바에 컵을 깨버리자. (일동 웃음) 그렇게 얘기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는데요. 저희도 진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고민을 많이 한 결과는 활동은 그걸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순간 그러면 기업일 밖에 할 게 없고, 그런 걸로 안할 거면 따로 각자 벌어서 시간도 어쩔 수 없이 각자 할애하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직업적으로 활동을 한다는 건, 빈고 같은 경우는 돈을 만지니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적은 돈이지만 가능하겠지만, 저희 같은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은 분리를 해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어요.

사회자_ (눈앞에 리슨투더시티의 책들을 가리키며) 저는 이 중에 두 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박수치며) 대성하실 거에요. (웃음)

사회자_ 저희가 이번 라운드테이블을 공중캠프에서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요. 공중캠프 역시 자치적으로 오랫동안 이 공간을 꾸려오셨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제4의 패널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 하나 해주시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고엄마(공중캠프 스탭)_ 공중캠프 커뮤니티가 오늘로 5407일째가 되었네요. 갑자기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 커뮤니티가 처음 생기게 된 계기였던 피쉬만즈(fishmans)의 가사 중에 “약속하지 않아, 지름길로 가지 않아!”라는 가사가 있는데요, 이 문구가, 아까 말씀해주신, 저희가 버티고 있는 노하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어제 공중캠프 계좌 잔고가 바닥나서 긴급하게 제 통장에서 500만원을 입금하긴 했는데요.

(일동 웃음)

고엄마(공중캠프 스탭)_ 다음 주가 여기 카페 공중캠프 11주년이라 기념행사가 있어서요. 어쨌든, 이미 많은 분들께서 말씀해주시고 질문하셨던 것처럼, 저희도 비슷한 고민을 해왔어요. 어떻게 하면 적당히 먹고 살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게 뾰족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문제지만요. 그래도, 적어도 타협하고 싶진 않다, 당위로만 활동하고 싶진 않다, 이 정도는 이제 우리들도 알고 있잖아요. 그럼 이제 질문은, 타협하지 않고 당위로만 활동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가 되는 걸까요?
식상한 비유긴 하지만, 까만 봉다리가 머리에 꽉 씌여진 채로 조여져 있어 숨도 쉬기 어려운 세계에서, 작은 바늘구멍 정도의 숨구멍을 만드는 일. 개인적으로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엠선생이 말한대로 낮에는 낚시도 하고 소도 몰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비평도 하면서, 어부로도 목동으로도 비평가로도 살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그 정도는 지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과거의 사례를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공중캠프도 마찬가지인데, 96년도에 신촌이 지금의 홍대 같았을 때 땅값이 너무 많이 올라서 연대 앞에 있던 ‘오늘의 책’이라는 인문사회과학서점이 월세가 갑자기 10배 정도 올라서 쫓겨났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의 책’에 있는 메모판에서 서로의 동선을 확인했었어요. ‘오늘 기계공학과 얘들은 여기서 술을 마시는구나’ ‘가서 좀 얻어먹을까’. 그런 곳이 사라진다고 하니까 학생들이나 교수들, 졸업생들이 돈을 모아서 조합 식으로 새로운 ‘오늘의 책’을 만들었어요. 지하에는 까페도 만들어서 술도 마시고 세미나도 하고. 근데, 그 공간이 4년 정도 후에 폐점을 결의하게 되었어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앞서 여러분들이 말씀하신대로, 삼각형 형태의 꼭지점이 있는 조직형태가 한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참세상 말고 예전 PC통신 시절에 참세상이라는 온라인 공동체가 있었는데요.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어요. 그렇게 사라지는 공동체들을 보면서 ‘이게 왜 이렇게 없어져야 했을까?’라는 고민이 많았어요. 물론, 공동체에 따라 삼각형 구조가 더 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공중캠프의 경우는 가능한 꼭지점이 없는 원형적-수평적인 구조가 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학생일 때는 졸업하면 아까 철웅이 얘기했던 것처럼, 지금 하는 활동을 후배한테 넘겨주고 사회에 나가서 새로운 뭔가를 찾기위해 시간적 공간적인 단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컨대, 자유인문캠프처럼요. (웃음) 향후에 자유인문캠프 라운드테이블에서, 실패한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공동체은행 빈고 얘기는 오늘 처음 들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질문은 안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 (일동 웃음)

사회자_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신 거 같습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각 단위별로 계획하고 계신 일이나 앞으로 운동의 전망도 좋구요. 그런 얘기를 듣고 끝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최철웅(자유인문캠프 기획단)_ 마지막 판촉!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판촉이라면. 다음 주 목요일에 새움에서 자본론 2권 세미나를 시작하구요. 7시 반에 진행하구요. 1권이 8개월 만에 끝이 났어요. 조금 늦어졌지만. 지금까지 판촉이었고. (웃음)
저희는 계속 그 문제를 계속 생각을 해요. 지금 저희한테 가장 큰 문제는 월세가 지속적 나가면서 공간을 유지하는 게 쉽진 않은 일이라는 건데요. 저희가 10년 동안 4번을 이사했어요. 처음에는 신촌 쪽에 있다가 사람들이 몰려와서 홍대 인근에 있다가 그쪽도 사람들이 몰려서 이제 상수 쪽에 있어요. 혹시 아시는 분들 계실지 모르겠는데 홍대입구에서 합정역 쪽으로 오다보면 오른쪽에 건물 중에 축지법이랑 고공비행술 가르친다는 사무실이 있는 건물이 있어요. 저희가 원래 그 사무실 바로 아래층에 있었거든요. 살면서 저희 사무실 옆 계단으로 올라가시는 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희끼리 “거기는 진짜 고공비행술해서 올라가시나보다.” (일동 웃음) 거길 가려면 우리 옆 계단을 지나가야 되는데 본 적이 없어요. “아, 그분들은 창문을 열고 다니시는구나.” 생각을 했는데요. 거기도 결국 월세가 올라가서 사무실을 뺐습니다.
아무튼 상수에서도 두 번 장소를 옮겼어요. 그 와중에 저희 별관은 유지 문제 때문에 빼려고 최근에 결정을 했거든요. 원래 저희가 생각한 원대한 그림은, 나름의 주택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했었어요, 꾸준하게. 새움 활동에 동의하시는 회원과 후원회이 장기적으로 생활도 할 수 있게, 자기 나름의 생활터전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장기적으로 모기지를 나름대로 하는 거죠.출자금들을 모아서 새움 나름대로 건물을 마련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주체라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 형성할 것인지, 누구 한명한테 과도한 의견이 쏠리거나 그 사람에게 모든 과업이 집중되었을 경우에 생기는 편향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항상 그런 문제들을 계속 논의하고 토의하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고 10년차가 되니까 우리 20년 되면 짓는 걸로 하자라고 얘기했어요. 이러다 언제 지을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아무튼 간에 저희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계속 여태까지 10년을 그렇게 버텨왔었고 내일 어떻게 무너질까를 고민하기 보다는 지금 활동들에서 우리가 뭘 하고 왜하는지에 대한 생각? 다만 문제는 거기에 헌신만 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기 삶을 유지시키는 방향에서요. 이런 표현이 있잖아요. 내가 없으면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 된다. 그래서 이런 공간들에 파편화된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모이는 일종의 네트워크가 나름대로 자생력을 갖고 퍼져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세미나 네트워크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하게 기본 프로그램(자본론, 맑스주의 세미나)은 핵심적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그 이외의 영역들에서도 좀 더 많은 방식으로, 생활권역을 묶어나가려고 하구요. 그래서 지역으로 내려가기도 하구요. 지역은 특히나 그렇거든요. 저도 대구와 구미 몇 번씩 왔다갔다 느꼈던 건 거기 있는 활동가 분들이 얘기하세요. 이렇게 서울에서 주기적으로 내려와서 함께 몇 달 동안 공부하는 경우가 없었다고. 이벤트성으로 싹 다 모아다가 한번 연설하고 날아가는 경우는 많았어도, 이렇게 6, 7, 8개월씩 “여러분들이 스스로 공부하시고 다 가져 가십시오”하고 세미나 커리큘럼 가져와서 마음껏 쓰시면 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한 경우가 없었다고 하셨어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지점들은 있지만 어쨌든 이런 고민들을 계속 나눴으면 좋겠어요. 저희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요. 사실 가능성이란 건 찾아보면 있을 수 있을 텐데 혼자서 하면 또 안 되는 거고 누가 대신 해주기를 기다린다고 해서 사실 되는 문제는 또 아니잖아요. 완벽한건 없지만 저절로 잘 되는 거도 없는 것처럼 이런 고민을 계속 지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11월 5일 다음 주 수요일이 ‘은행전환의 날’입니다. (웃음)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 65만 명이 은행전환운동에 동참을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맡긴 돈을 가지고 이 자식들이 장난질을 하고 그 사고는 또 시민들이 낸 세금들로 메꾸는 이 어이없는 작태에 동의하지 말고 우리의 돈을 협동조합이나 신협 같은 곳들로 바꿔서 맡기자는 운동인데요. 동참하는 방법은 공동체은행 빈고만 있는 건 아니구요. (웃음) 최근에 신용협동조합들 중에 정신을 차리고 있는 곳들도 곳곳에 있는 걸로 알고 있고, 협동조합 다람쥐회라는 곳도 있고 아니면 각자의 영역에서 이렇게 돈을 모아서 운영해보는 흐름들을 만들어 내는 것도 되게 중요할 거 같아요. 저희 빈고랑 연대하고 있던 청주 생활공동체 공룡은 최근에 대안금융세미나를 자체적으로 진행하면서 그곳에 있는 사회적 기업들이나 여타 다른 공동체들과 또 다른 공동체은행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면 대안금융쪽 활동들은 많이 저조한 거 같아요.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이런 걸 운영할 때 필요한 부분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물어보시면 저희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예전에 빈마을의에서 5, 6개 집들이 각자 잉여금이란 걸 만들어서 운영했어요. 겨울에 보일러가 터질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잉여금을 각각의 통장으로 갖고 있다가 빈고의 공동체 통장이라는 걸 개설해서 맡겨놨는데요. 그 돈이 2000만원이나 되더라구요. 그 돈으로 새로운 빈집 하나를 만드는 보증금으로 썼어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만원, 5만원, 10만원, 이 돈이 모이면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삶의 기반들은 천차만별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11월 5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저축을 어디에다 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생각해보시면. (일동 웃음) 빈고에서는 그걸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화를 같이 본다거나 자전거를 같이 타고 다니면서 그런 공간들을 둘러보다든지 이벤트를 기획해서 공지를 할 거에요. 그래서 관심 있는 분들은 동참해주시면 좋을 거 같구요. 또 할 얘기가 있었는데 까먹었네.

사회자_ 전체적인 계획?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아, 전체적인 계획. 그래서 빈고 같은 경우에는 아까 중요한 지점을 이야기해주신 거 같아요. 세모 피라미드? 꼭지점? 저희가 원래 대표체제가 매번 바뀌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대표가 돌아가면서 하기도 했고, 작년에는 6개월에 한명씩 두 명의 대표가 돌아갔고 올해에는 3인의 대표 체제를 가져갔거든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아까 말씀하신 세모꼴? 뭔가 작년보다 책임을 지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뭔가 이 안의 정보가 고이고 있는 게 아닌가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는데요. 이걸 지속할 수 있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계속 실험하는 건 저희의 끊이지 않는 고민이 될 거고요. 이걸 쉽게 동참해서 활동할 수 있는 활동가들 내지는 적극적인 조합원들을 양성해내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임대문제에 직면했는데요. 그래서 여기도 다 그런 고민들을 하고 계시는데, 월세 45만원 집주인한테 주면 아깝잖아요. 나가는 월세, 우리가 다시 가지고 오면 쓸 수 있는 데가 정말 많을 거 같아요. ‘이런 구조들을 어떻게 다시 바꿔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빈고는 계속해서 할 거 같아요. 그리고 빈고와 같은 곳들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운동에도 계속 고민할 거 같습니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사실은 지난 뉴욕 월가 오큐파이 운동도 금융위기나 청년문제 등등이 다 연결이 되어 있었고, 뉴욕 오큐파이 운동 역시 도시권에 대한 싸움이죠. 도시에서 도시인답게 살 수 있는 권리지요. 월세를 적게 내면서 서울에서 살고 싶은 욕망들이 다 있죠. 지방에서 살면 문화적인 인프라가 없잖아요. 내성천에는 40대면 베이비이고, 60대면 청년일 정도로 젊은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공동체를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그러니 도시가 아닌 곳에서의 삶이라던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거 같아요. 두물머리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은 그 곳이 서울하고 가깝기도 하고, 세팅을 잘해서 까페를 열고 그랬는데요. 리슨투더시티같은 경우에는 사실은 느슨한 조직이에요. 조직이라고 할 거도 없고 모임 같은 건데, 저희는 어쨌든 단기적으로는 살아있는 게 목표구요. 중장기적으로는 도시 밖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이름은 리슨투더시티지만. 도시는 많은 것들을 희생시키면서 있는 거잖아요. 정말 많은 것들을 희생시켜야지만 도시 인프라가 돌아가고 서울이라는 도시는 정말 싸다구 맞아야하는 도시죠. 모든 재화와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데, 이런 독점들을 되돌릴 때가 온 거 같아요. 그런 것들 때문에 고민이 많이 드는 지점이 있는 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인구를 서울이 아닌 곳에 퍼뜨릴 수 있을까 고민해요. 일단은 작은 세미나 같은 것들을 내성천 근처에서 하고 싶지만. 아니 할.. 할… 할… 할 건데요. 여러분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가요.

좌인(공동체은행 빈고)_ 저희 내성천 갔다 왔습니다! (웃음)

박은선(리슨투더시티)_ 저 없을 때 왔었구나. 저 없을 때 오셔서 만나지도 못했네요. 저 있을 때 오시구요. (일동 웃음) 한 번 이렇게 왔다가시고 그런 거도 좋긴 한데 지속적으로 뭔가 연결이 되면 좋을 거 같아요. 지금 도시권만 이야기할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모든 게 위기잖아요. 특히 생태는 최악이에요 지금. 서울에 살고 있으니까. 해방촌 살고, 이대, 신촌 살고 있어서 실감을 못할 뿐이죠. 4대강 후속사업을 5년 동안 또 할 거에요. 거의 5천억원 이상 써가지고. 이런 생태적인 위기. 이명박 정부 때, 친수구역 특별법을 통과시켜서 모든 강을 개발할 수 있었는데요. 이제는 비슷한 법을 산에도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케이블카 놓고 싶으면 어디든 다 놓아도 되구요. 지리산에 댐을 만들려고 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도시권에만 집중을 한다면, 사실은 그런 것들이 소모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조금 힘든 이야기지만 사고의 폭을 확장시켜서, 아까 새움 말처럼 대구나 이런 지역에서 활동을 만드는 거도 중요할 거 같아요. 자유인문캠프 같은 경우에도 지방에서도 많이 하면 좋겠거든요. 그렇게 하면 조금 더 재미있는 활동들이 퍼져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_ 감사합니다. 저희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들은요. 당장 중앙대 같은 경우에는 학교가 선전포고를 했거든요. 11월부터 구조조정을 할 거라고. 그리고 이미 대학원 단위들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구요. 계속해서 구조조정 투쟁도 결합을 하겠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대학의 공공성, 교육의 공공성 문제에 대해서 저희들 스스로 활동가적 주체로 어떻게 활동을 계속해서 가져갈지 고민 중이에요. 아까 10년 얘기도 나왔고 20년 얘기도 나왔는데 어떻게 보면 끝이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희가 대학원 과정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서 얼마 전부터 세미나 우리끼리 공부를 하자는 취지에서 젊은 연구자들과 공부하는 학술적인 자리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어요. 그게 11월 5일이라 빈고 행사랑 겹치는데요. (웃음) 화폐에 관심을 가지면 (빈고를 가리키며) 저쪽에 가시고 저희는 푸코의 통치성으로 세미나를 하니 이쪽에 관심있는 분은 자유인문캠프로 와주세요. 각자 간 다음에 나중에 서로 의견 나누면 또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 11월 5일 저녁 7시에 (일동 웃음)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대학원 402호에서 푸코효과, 푸코의 통치성을 주제로 이승철, 이규원 선생님 모시고 진행이 되니까 그때 많이 와주세요. 동시에 겨울 연속강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월 말에 수강신청하고, 1월 중순부터 2월말까지 진행이 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직 어떤 선생님 모실지 준비가 안 되었는데요. (은선을 가리키며) 선생님 방학 때 할 일 없으시면 강의라도. (웃음) 저희 강사료 다 드립니다.
라운드테이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각자의 위치와 영역에서 꾸준히 활동하시는 분들이 지속적으로 있는 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그런 형태로 어느 날 만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하고 뒷풀이 있으니 끝나고 가지 마시고 술 먹읍시다. 수고하셨습니다.

주현우(세미나네트워크 새움)_ 참고로 자본론 2권은 11월 6일입니다! 다음날이니까 여유 있게 또 오시면 됩니다!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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