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겨울 자유인문캠프 공개강연 ‘혐오와 반동의 시대를 진단한다’

혐오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입에 오르내린 때가 최근에 또 있었을까? 이제 불호(不好)의 일상적 표현은 ‘극혐’이다. 뿌리 깊은 여성혐오, 이자스민으로 상징되는 이주자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 안전망을 철거하고 있다. 혐오의 한편에서 반동의 시대가 도래한다. 일베가 광화문에 결집해 집회를 열고 서북청년단을 자칭하는 이들이 나타나더니, 급기야는 백색테러까지 벌어졌다. 바야흐로 혐오와 반동의 시대다. 하지만 혐오와 반동이 실체적 위협으로 대두된 지금, 그것들을 단순히 일탈행위로 치부하고 비난하는 것이 충분한 대응일까? 2015년 겨울 자유인문캠프 공개강연은 혐오와 반동의 시대를 문화적·정치적으로 진단해보고자 한다.

 

일시|2015년 1월 5일(월)|1월 7일(수)|1월 9일(금) 저녁 7시
장소|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제2의학관(106동) 511호 수강료|무료
문의|010-4526-9378 / @re_univ / reuniv10@gmail.com
주최|자유인문캠프(freecamp.kr)

 


1강 왜 우리는 혐오하는가? 인종주의의 역사에서 배우기
염운옥(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1월 5일(월) 저녁 7시 서울캠퍼스 제2의학관(106동) 511호
나는 인종주의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신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 “문화가 다르니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회주의자나 여성주의자를 자칭하듯, ‘신념’으로서 ‘인종주의’를 신봉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인종주의는 왜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제노포비아는 어떻게 인종주의라는 구조화된 악이 될까요? 제도화된 인종주의는 일상에서 어떻게 작동할까요? 이 강의에서는 ‘왜 우리는 혐오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타자 혐오의 대표적인 예인 인종주의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돌아보고자 합니다. 인종주의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변주를 거듭하며 수많은 변종을 생산해왔습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은 “머리천 개 달린 히드라”라고 할 만합니다.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공격과 폭력사태의 밑바닥에는 반(反)이민 포퓰리즘과 결합된 인종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차별에 찬성”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글을 인터넷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류 외국인이 150만 명을 넘는 한국에서 인종차별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져 나올 가능성은 높습니다. 명쾌한 결론이나 대안을 기대하기 보다는 고민의 보따리를 펼쳐놓고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강 부정의 위기를 돌파하기: 반동의 문화정치를 읽는다
서동진(계원예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1월 7일(수) 저녁 7시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제2의학관(106동) 511호
일베, 어버이연합, 극우기독교도, 강박적 민족주의자 그리고 스스로 우익보수라 자처하는 세력의 반동은 나날이 확대 중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익 포퓰리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얼마 전까지 맹신했던 소통과 토론이라는 민주주의적 대안은 설득력이 없다. 지금의 우익 포퓰리즘은 맹신적이고 권위를 찾는다. 그들은 대화를 통해 우리가 오성적으로 추리하고 그를 통해 모두에게 좋은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또 다른 대안은 우익 포퓰리즘의 분신이라 할 수 있을 타락하고 저열한 것으로 단죄된 세계를 추상적으로 거부하는 시적인 몸짓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정의 교착 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인가. 반동화된 부정으로 치닫는 세계로부터 부정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에 대해 묻고 사유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3강 포퓰리즘, 민주주의, 반동의 정치
문강형준(문화평론가)
1월 9일(금) 저녁 7시 중앙대학교 서울캠퍼스 제2의학관(106동) 511호

21세기 한국에 혐오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그런데 이 유령은 부끄러워 밤에만 몰래 출몰하는 게 아니다. 대낮의 거리를 활주하고, 네트의 바다에 넘실거리며, 미디어의 협조를 받아 ‘여론’이 되거나 ‘의거’가 되기도 했다가, 심지어 판관들의 법조문에까지 당당히 등장하고 있는 중이다. 흥미롭게도, 이 혐오의 유령은 ‘표현의 자유’라는 말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나라사랑 밖에 모르는 대통령에서 종북 잡는 폭탄을 만드는 고등학생까지, 한국의 소위 애국보수들의 단골메뉴인 이 혐오의 정동은 이제 시민의 당당한 자유, 보장되어야 할 권리로까지 스스로를 웅변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며, 때로 좌파들마저 여기에 부화뇌동하곤 한다. 이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혐오의 정동, 혐오의 액션을 확산시키는 최근의 우파 포퓰리즘과 그들을 용인하는 민주주의 체제 사이의 관계가 그 중 하나다. 혐오가 만들어내는 이 포퓰리즘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파시즘의 전단계인가? 민주주의는 어떻게 포퓰리즘과 관계를 맺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민주주의를 옹호할 것인가? 민주주의 너머는 있는가?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문화와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 아니, 그것들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문제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현재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 어떤 취약한 체제와 그 체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그리고 어쩌면, 그 체제를 전복시켜버릴지도 모를 떠오르는 괴물과 대면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혐오를 내세우는 반동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반동에 대한 반동을 사유해야 한다.

※ 본 행사는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자치예산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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