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아닌 학생 위한 언론들 [한겨레 21 제 935호 2012.11.12]

수선관 본관 1층 프린트매니저 왼쪽 구석, 경영관 1층 입구 쪽 이름 모를 예술작품 사이, 노천극장 무대

벽에 나 있는 구멍, 경영관 지하 2층 복사실 스테이플러 찍는 탁자 밑….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캠퍼스 곳곳에 보물이라도 숨겨져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곳엔 숨은 <고찌>가 있다.

 

강요된 침묵에 반대하다

‘고찌’가 무엇인고 하니, 성균관대 학생 8명이 가내수공업 공정으로 발행하고 있는 4쪽짜리 신문

 ‘고급 찌라시’의 줄임말이다. <고찌> 편집부는 이달 6호를 발행한 뒤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지나가다

 겟(get)할 수 있는 배부 스팟’을 1200여 명의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알렸다. 각 동아리 방에는 늦은

 밤을 틈타 직접 배달한다. 신문기자 이름은 실명으로 표기되지 않는다. 각 기사 아래에는 고발하라·미오지

 등 기자들의 필명이 적혀 있다. <고찌> 편집부는 학교에 동아리로 등록돼 있지 않다. 학교나 학생회

한테서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학내 문제를 다루는 데 틀에 얽매이지 않고, 외압에서 한층 자유로운 B급

 언론질을 위해서란다. 정확한 위치를 밝힐 수 없는 교내 한 공간에서 득템한 <고찌> 과월호를 살펴보니,

 학교의 ‘허접한’ 예결산 공고와 총학생회의 부실 결산을 두루 비판하는 기사가 있었다.

“학내 언론의 민주성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기자단이 제아무리 열심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도, 김준영

 총장의 최종 승인 없이는 발간될 수 없다. 기사뿐 아니라 대자보도 검열 및 철거의 대상이다. 결국 말하는

 이가 없고 소문의 진위를 아는 이가 없다. 할 말이 있어 말을 하려 하는데도 도리어 침묵을 강요하니,

신하들의 목에 신언패를 채우던 폭정과 다름이 무엇인가.”

아아, 이 무슨 쌍팔년도에나 있을 법한 호소란 말인가. 안타깝게도 2012년 3월 <고찌> 편집부가 창간호에

 실은 ‘찌라시스트 선언’ 내용 중 일부다. 지난해 말, 논란거리가 있어도 너무 조용한 교내 분위기에

분기탱천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고찌> 편집장이자 이 학교 3학년인 김아무개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원래 중앙도서관 앞에 자보판이 있었는데, 건물 리모델링을 하면서 자보판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런 문제에 대해 아무도 대응을 하지 않는 게 아쉬웠다.”

창간 준비가 진행되던 중 지난 3월 성균관대 학보사 <성대신문>이 주간교수의 결호 선언으로 발행되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졸업식 날 ‘부당하게 박탈한 강의권을 돌려달라’며 1인시위를 하던 류승완

박사와 학교 쪽 사이에 마찰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기사화하겠다는 기자단과 이를 반대하는 주간교수가

대립한 까닭이다. <고찌>는 이 사태를 다룬 ‘주간교수 헌정 특집호’라는 문패를 내걸고 창간 준비 2호를

 발행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고찌>를 게릴라식으로 배포한 건 아니다. 대자보를 자보판에 붙이고 그

위에 종이를 덧대 배치대를 만들었다. 그런데 자보가 찢어지거나 신문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시가

 5만원 상당의 배부대를 사서 설치해보기도 했지만 철거됐다.

학생 시각에서 문제제기하려고

성균관대에 <고찌>가 있다면, 중앙대에는 <잠망경>이 있다. 한 학기에 2번꼴로 발행하며, 8쪽 분량이다.

 지난해 12월 창간호에 실린 글은 ‘찌라시스트 선언’에 담긴 문제의식과 어쩐지 닮았다.

“학내 자유의 공기는 점점 희박해지고, 예민한 이들은 점점 더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대학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만 목소리를 내는 데 머뭇거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잠망경을 올린다. 너무 깊이 잠수하지도, 수면 위로 맨몸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수면 위의 상태를

지켜보려 한다.”

<잠망경>의 편집 및 발행인은 ‘잠수함 토끼들’이란다. 잠수함 토끼들이란, 2010년 겨울부터 방학 때마다

 ‘자유인문캠프’(이하 자캠)를 열고 있는 기획단의 다른 이름이다. 구성원은 새내기부터 대학원생까지

 12명이다. 2010년 중앙대는 단과대 통폐합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기초학문이 죽는다’며 구조조정을

 강하게 반대하던 학생들은 징계를 당했다. 학교 쪽 행보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교지에 대해선 예산

전액을 삭감하기도 한다. 엄혹한 상황이 이어지자 학교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을 답답해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트위터를 통해 ‘우리가 진짜 듣고 싶은

 강의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나오면서 자캠이 시작됐다. <잠망경> 발행 이유도 자캠

기획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잠망경> 편집위원인 중앙대 4학년 곽동건씨는 “2010년 이후 교내에서

자보를 붙이는 등 학교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활동이 상당히 위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입장이

아닌 학생들 입장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관점이 뚜렷한 매체를 만들어보자 싶었다.” 최근 발행된

 <잠망경> 4호는 학내 간행물을 출판하려면 총장 승인이 필요하다거나, 교내 게시물에 대해서는 학교 쪽

허가가 필요하다는 규정 등 위헌적 요소가 있는 학칙이 여전히 중앙대에도 숨 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내 문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교내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잠망경> 기자들

 역시 필명을 사용한다. 혹시 모를 탄압에 대비해서다.

돈줄을 쥐고 있는 학교가 학보사나 교지의 편집권을 흔드는 사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학생 처후

개선과 비용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비운동권 학생 대표가 많아지자, 학생회비에서 배분하는 자치언론

예산을 줄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취업 등 당장 해결해야 할 것들이 산적한 대학생들에게 교내 현안은

 어쩌면 먼 일일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학내 소통과 공론의 장이 위축돼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매체나

소통 공간을 모색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 학생들의 소통 방편이었던 대자보도 대학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한 대학의 텅빈 학내 게시판 모습. 한겨레 신소영

학교 담장 밖에서 소통 꿈꾸다

최근 학내 분규가 있었던 한 대학의 학보사 편집장은 날마다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대부분의 학보사가

 그렇듯, 이 학교의 학보사 발행인은 총장이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기사를 게재할 때, 학교 쪽

인사에게서 문장 어미를 수정하라는 지적을 들은 적도 있다. (학교의 공식 기관이지만) 학교 취재가

원활한 것도 아니다. 학교로부턴 좌편향이라는 소리를 듣고, 학생들에게서는 어용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건강한 학내 여론을 조성하려면 제2, 제3의 대안 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력 등 현실적인

문제로 좌초되긴 했지만, 이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매체를 만들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 지난 9월 국민대에서도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국민저널>이라는 새로운 신문이 등장했다. 격주로

발행되고, <고찌>처럼 학교나 학생회 양쪽에서 지원을 받지 않는다. <국민저널>을 만드는 학생 7명

가운데 3명은 기존 교내 방송국과 학보사 기자 출신이다. 학교를 비판하는 콘텐츠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갈등을 빚고 잘리거나, 제 발로 걸어나온 이들이다.

대학 내에서 소통 욕구를 풀지 못한 학생들 중에는 학교 담장을 넘어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20대가 스스로

 만들고 읽는 독립잡지를 창간하기도 한다. 이화여대 4학년 박민정씨는 친구들과 20대를 위한

시사잡지가 없다는 수다를 떨다 ‘그럼 한번 만들자’라는 심산으로 시사월간지 창간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함께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20여 명이 함께 작업한 끝에 지난 9월 <듀르나>

(DIURNA)라는 20대를 위한 시사월간지가 탄생했다. <듀르나>는 ‘매일매일 기록하다’는 뜻의 라틴어다.

지난 10월 2호를 발행해 서울 및 수도권 대학 40군데에 무료로 배포했다. 박민정씨는 “학내 자치 동아리

 활동이나 시민단체 기자단 등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해왔지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진 않았다”고 했다. 박민정씨는 어떤 잡지를 만들고 싶을까. “계속 고민 중인데, 일단 많은 20대를

 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잡지 창간 전에 조사를 해봤는데, 대학생들이 한쪽으로 치우친 매체에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고 하더라. 물론 기계적인 중립은 불가능하겠지만, 재밌고 말랑한 글로 세상을

이야기하려 한다. 20대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학교서 독립해 자율 편집권 확보

대학 내에서든 밖에서든 독립언론이 ‘지속 가능’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재원 마련의 길은

험난하고, 고생을 사서 하려는 이들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예상했을까. <듀르나>엔

경영지원팀이 따로 있다.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매체 소개서를 깨알같이 작성해

광고를 유치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이들은 창간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소셜펀딩 사이트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후원자 중에는 250만원을 쾌척한 20대 창업자도

있었다. 2호 발행 뒤 재정 상태는 다시 바닥이다. 3호 발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재 불철주야 노력

중이다. <고찌>나 <국민저널>의 경우엔 기자들이 주머니를 털어 인쇄비를 마련하고 있다.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고찌>는 조만간 소셜펀딩 사이트를 활용해 후원금을 모아볼 게획이다.

<잠망경>은 자캠 운영으로 모은 수익금이나 후원금을 재원으로 발행되고 있는데, 지난여름 자캠에서는

 수익금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재원을 고민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 교지 <중앙문화>가

 예산에서 100만원을 떼어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언론들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학교와

갈등을 빚은 뒤 <중앙문화>는 학생들에게서 교지대금을 자율납부 방식으로 받기로 한 대신, 자율적인

편집권을 확보한 자치기구가 됐다. 예산은 예전보다 줄었고, 아직 학칙에 존립 근거가 명시돼 있지 않아

입지가 불안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자치언론 지원 사업을 계획한 까닭은 무엇일까.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지원한 돈으로 교지를 만들다 보니, 학교 소속일 때보다 책임감이 커졌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언론 생태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돈을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정근 <중앙문화>

편집장의 설명이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원문 링크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2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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