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인문학 없앤다고? 우리가 직접 만든다! [슬로우뉴스]

http://slownews.kr/4357

 

인터뷰어/인터뷰이 소개

Q. 리승환 : 8년 차 블로거, 4년 차 직장인. 인문 정신에 불타올라 초등학교 ‘바른 생활’ 수업에서 단 한 번도 ‘수’를 놓친 적 없는 인문학 수재이지만, 자본주의를 이겨내지 못해 기회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 한량을 지향하고, 통칭 웹에서는 ‘리승환 수령’으로 불리고 있음. 블로그 현실창조공간을 운영 중. 트위터는 @nudemodel, 페이스북은 /angryswan

A. 자유인문캠프 : 중앙대 학생들이 손수 만든 조직. 매 학기 자유인문캠프 연속강좌 형식으로 다양한 강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자기 교육’과 ‘해방의 인문학’을 모토로 다양한 자발적 대안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홈페이지는 freecamp.kr, 트위터는 @re_univ, 페이스북은 /reuniv.

1. 비밀의 모임: 자캠과의 만남

리 : 반갑다. 자기 소개를 해 보자. 최 : 최철웅이다. 중앙대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하고 있다. 자유인문캠프(이하 자캠) 기획단 일원이다.

리 : 결혼 정보회사 최하 등급 직업이다.

최 : ……

리 : 자, 고도리 방향으로 자기 소개를 해 보자.

곽 : 곽동건이다. 중앙대 신방과 4학년이고, 자캠 대장이다.

리 : 왜 나이 많은 최철웅 씨가 대장이 아닌 건가?

최 :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내가 다 조정하는 거다.

리 : 이명박과 이상득같은 관계로 보면 되는 건가?

최 : ……

리 : 나머지도 자기 소개를 해 봐라.

안 : 안우혁이다. 중앙대 신방과 4학년.

성 : 성세희다. 중앙대 사진학과 2학년.

김 : 김규백이다. 중앙대 정외과 3학년.

리 : 너는 참 귀엽게 생겼구나. 마치 고대 그리스의 미소년을 연상시키도다.

김 : ……

곽 : 예쁜 사랑하세요(…)

상큼한 미소의 김모 씨. 하지만 그는 리승환의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거부했다.

 

2. 학생들의 자발적 교육공간, 자캠이 시작하기까지

리 : 그럼 인터뷰를 본격 시작해 보자. 도대체 자캠이 무엇인가?

최 : 매 학기마다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강의를 마련한다. 여름(7~8월), 겨울(1~2월), 이렇게 1년 두 차례 연속 강좌를 진행하는 게 기본이고, 학기 초에는 새내기 교양학교를 진행하고, 학기 중에는 일회성 공개강연을 연다. 또 주기적으로 다큐멘터리 상영회, 책 읽기 모임, 청년운동 집담회 등도 한다.

리 : 자캠은 어쩌다가 생기게 됐나?

최 : 2008년 중앙대에 두산 재단이 들어온 후, 2009년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취업을 위한 대학을 만들기 위해 인문학과를 통폐합시켰고, ‘회계와 사회’를 필수교양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폭력이 장난 아니었다. 2009년 교지 ‘중앙문화’가 재단에 비판적이고 총장을 조롱하는 만화를 실었는데, 학교측은 ‘발행인 까는 언론이 어디 있냐’며, 강제 회수했다. 천막 농성이 계속해서 진행됐고, 급기야 노영수 학생이 크레인에 올라가서 시위하고, 또 다른 학생 두 명은 한강대교에 올라가서 시위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징계뿐이었다. (참조 1 : “중앙대 학생이 두산 직원입니까?”, 참조 2 : 중앙대 ‘구조조정 반대’ 학생 줄징계)

당시 중앙대 재단 풍자 만화

 

리 : 거의 정신 나간 학교로군. 그런데 당신… 이렇게 막 까도 되는 건가?

최 : 이미 그 총장 임기가 끝났다.

리 : (……) 구조조정에 맞선 성과는?

최 : 일단 지쳤다. 구조조정은 흔들림 없이 진행됐고, 우리가 바꾼 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통해 비판적 목소리가 위축됐다. 교지도 회수 당하고, 시위로 징계도 받다 보니, 대자보 하나 쓰면 징계받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됐다. 이렇게 공론장이 위축되는 상황 속에서 자캠이 태어났다.

리 : 오… 어쩌다 구조조정이 자캠으로?

최 : 기동전이 아닌 ‘희망의 진지전’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가 제공하지 못하는 인문학을 같이 공부하고, 비슷한 고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자캠이라는 플랫폼을 만들게 됐다.

리 : 자캠 멤버들은 어떻게 모였나?

최 : 트위터에 날리니까 (곽)동건이가 관심 있다고 온다고 하더라. 그게 시작이었다.

곽 : 난 온다고 안 했다. -_- 재미있는 일 한다고 해서 트위터에서 “재미있겠네요”라고 멘션 보내니까 갑자기 시간과 장소를 DM(쪽지)로 날리더라.

리 : 무슨 런닝맨 찍냐… -_-

곽 : 오라고 하길래 왔다가, 뜬금 없이 대장이 되어버렸다. -_-;;;

리 :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을 배우는 컨셉으로 결정되게 된 이유는?

곽 : 비단 중앙대뿐 아니라, 대학이 직업 훈련소처럼 되면서 학교 안에서 인문학, 비판적 사회과학을 공부하기 힘들게 됐다. 그런 걸 배우려면 나가서 비싼 돈 주고 접해야 하는 상황을 타개할 필요가 있다는 데 모두가 동감했다. 그래서 다시 예전처럼 대학 안에서 교육, 문화 예술 운동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

최 : 벤치마킹 대상은 한예종의 ‘자유예술캠프’였다. 그들이 예술강좌를 여는 것처럼, 인문학 대중강좌를 중앙대에서 폭넓게 꾸려 보자는 생각으로 기획에 나섰고 2010년 11월에 처음 자캠을 열게 됐다.

리 : 아무리 그래도 처음 시작하려 할 때 두려움이 있지 않았나? 이런 유사 사업들은 이미 쓰러진 일이 수 차례 있고,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많아 보이지도 않는데…

곽 : 중앙대 구조조정에 대해 재단은 “중앙 가족이 한마음이 되었다! 학교발전 위해 모두가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운동권 총학생회서 학술 관련 행사 열면 앞에 10명 정도 앉아 있다. (최 : 게다가 그 열 명이 맨날 보던 10명이다. -_-…) 그런 상황이다 보니 거기 가볼까 했던 사람들까지도, 가면 뭔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그렇게 인문학, 사회과학 등 교양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도 ‘적당히 취직만 잘하면 되는구나’ 식으로 체념하게 되는 게 안타까웠다. 정작 자캠을 시작하려 할 때, 비슷한 사업을 한 경험이 있던 총학생회도 우려를 표명했다. 뜬금 없이 판은 크게 벌리는데, 사람들이 안 오면 패배감만 커지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취업 공부는 취업 공부대로 하면서, 내가 하고픈 공부 하려는 애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좀 무모하게 시작했다.

최 : 그래도 우리는 처음 시작할 때 꽤 희망적이었다. 이런 커리큘럼으로 강의를 열면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는 아닐지라도, 분명 의미 있는 숫자가 나올 거라 생각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놀라울 정도로 깊은 관심을 지닌 학생들이 많았고, 새내기도 상당수였다. 현재 기업화되는 대학의 방향에 찬성하지 않고,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매 학기 200~300명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이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힘도 받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게 바로 자캠의 지향점이 아닐까 한다.

리 : 여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은 누가 있는가?

곽 : 수업을 해주신 선생님들은 다 많은 도움을 준 셈이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시고, 돈도 안 되는 수업을 열성적으로 해 준 선생님들께 정말 큰 감사를 느낀다.

최 : 지금은 재정적으로 독립했지만 1회 때는 대학원의 지원도 중요했다. 처음에는 어찌될지 모르니까 학내에서 여러 단위의 공동주체를 찾아 지원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러던 중 대학원 인문계열 대표 신수진 씨가 취지에 동감해서 공동주최 형식으로 많은 지원을 해줬다. 또 대학원 총학생회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해줬는데, 이들을 통해 시작을 잘 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수강료가 거의 공짜 수준이라 더 이슈가 되기도 했다.

리 : 이미 각종 수유너머, 다지원(다중지성의 정원), 철학아카데미를 비롯해 외부 인문학 강의가 많지 않나? 자캠이 그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곽 : 순수하게 학생들로 이뤄진 기획단이 자율적으로 행사를 꾸린다. 또 학교의 빈 강의실을 활용하고, 우리도 상근 직원이 아닌지라, 상대적으로 외부 강의보다 수강료를 좀 싸게 책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 자캠 강의의 3단 구성: 인문, 사회, 예술

리 : 연속 강좌에 사람들은 좀 많이 오는가?

곽 : 생각 외로 많이 온다. 강좌별로 적으면 15명, 많으면 60명까지도 온다. 학기 평균 200~300명 정도 되는데, 제일 많이 왔을 때는 400명까지 온 적도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중앙대뿐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외부에서 더 많이 온다.

리 : 돈이 남으면 어디에 쓰는가?

곽 : 많은 경우 재투자한다.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다. 새내기 교양학교도 하고, 잠망경이라는 독립 신문도 세 번 발간했다.

리 : 강의하시는 분들은 주로 어떻게 섭외했는가?

최 : 처음에는 중앙대 내부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학내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 좀 비판적이시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 다음부터는 학교 외부 분들 섭외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명사들보다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 있는 젊은 선생님들을 많이 섭외하고 있다.

리 :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드보르잡 변희재 선생을 섭외할 생각은 없는가?

최 : 고소당하기 싫으니 답하지 않겠다.

리 : 커리큘럼은 어떤 식으로 잡았나?

최 : 처음에는 좀 뒤죽박죽이었는데, 지난 학기부터 사회과학(사유의 해방 커리큘럼), 인문학(상상력의 도약 커리큘럼), 예술(감각의 확장 커리큘럼)을 적절히 나눠서 하고 있다.

곽 : 조금씩 예술 강좌들을 많이 개설하고 있다. 수강생들 중 예술, 디자인을 공부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들이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있듯, 문과-이과 학생들도 예술에 대한 수요가 많을 거라 생각해서 이번에는 예술(감각의 확장 커리큘럼) 영역을 네 개까지 늘려서 인문, 사회과학과 같은 비중으로 늘렸다.

리 : 예술(감각의 확장 커리큘럼) 영역에는 체험 수업도 몇 개 있다. 이런 수업은 인문계 학생들이 기획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곽 : ‘즉흥 액팅을 통한 마음회로 풀기’라는 연극 워크샵 수업을 진행하는 여세진 선생님은 1회 때 수강생이었다. 뒷풀이 자리에서 이야기해 보니, 사당에서 액션가면이라는 극단을 운영하며 시민들 대상으로 연기, 공연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서로의 취지에 공감해서 자연스럽게 연기 워크숍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소극장에서 직접 몸을 움직이는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아주 좋다. 앞으로도 몸을 쓰거나, 실제로 같이 뭔가를 기획하는 등의 워크샵들을 개발해 보려고 한다. (참조 기사: 밤샘연습하고 회사출근… 이런 액션가면은 없었다)

최 : ‘전시기획으로 읽는 미술 + 이미지 + 시각문화’를 강의하시는 현시원 선생님도 수강생이었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알고 강사가 됐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조직을 키워나가는 것도 자캠의 재미 중 하나다.

리 : 뭔가 피라미드 조직 같은데(…) 이런 식으로 다른 곳과 협업한 적도 있는가?

곽 : 지난 봄 페스티벌 봄과 협업했던 적이 있다. 전위적이고 전복적인 예술을 지향하는 축제인데, 매년 봄마다 국내외 작가들의 공연을 지속적으로 펼친다. 그런데 우리랑 취지가 비슷해서 먼저 연락이 왔고, 자캠 수강생 대상으로 페스티벌 봄의 공연관람 할인 혜택을 줬다. 또 그들의 다원예술과, 자캠의 인문학을 묶어 시너지를 내는 공개 강연도 한 적이 있다.

리 : 본격 사상 검증을 하고 싶다. 좌빨 수업이 왜 이리 많냐?

최 : 자꾸 우리를 좌빨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별 관계 없다. 예전에는 대학에서 맑스 세미나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학교에서 수업조차 접하기 힘들지 않은가? 요즘 의외로 어린 학생들이 맑스주의에 관심 있고, 여기저기서 활동도 하는데 정작 제대로 공부할 기회가 별로 없기에 개설하게 됐다.

인터뷰 장소 교지편집부에서는 ‘강철군화’ 등 수많은 국방부가 족칠 서적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자캠 기획위원들은 자신들은 공간을 빌려 쓸 뿐이라 발뺌했다.

 

리 : 요즘 학생들이 맑스주의에 관심이 있다? 보통 소수만의 이슈고, 그들은 이미 공부할 장소가 있지 않나?

최 : 처음 자캠을 열었을 때 김공희 선생님의 ‘자본론 읽기 입문’에 대한 반응에 좀 놀랐다. 여기저기 운동단체들에서 자본론 읽기 해도 10명이 잘 안 모이는데 60명 정도가 신청했다. 맑스주의를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마땅한 곳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후에도 생각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서 지난 번까지 기초 강의(마르크스 자본론 읽기 입문)만 있던 정치경제학 수업을 이번에는 심화(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주제들)를 추가했다.

리 : 그 밖에 의외로 반응이 좋았던 수업이 있다면?

곽 : 박해천 선생님 강의가 상당히 인기를 끌기도 했고… 북촌을 답사하는 서울 역사 기행이 의외로 빨리 조기마감 됐는데, 알고 보니 홍상수의 영화 ‘북촌방향’ 버프가 있었다. 버프가 세기는 했던지, 이번 답사 수업 ‘서울역사 기행 – 정동길 답사’는 신청이 많지 않다. 지난 번 수강생들에게 상당히 호응을 얻은 수업인 만큼, 관심 있는 분들은 많은 신청 부탁 드린다.

리 : 좀 나아가 자캠이 인문학 공부의 플랫폼 역할을 구성해볼 계획은 없는가?

최 : 굳이 우리가 커뮤니티를 주도하지 않아도 이를 계기로 만난 사람들이 작은 네트워크를 만들고 연계되기를 바라고 있다.

곽 : 이미 자체적으로는 학내에서 매주 책 읽기 모임과, 다큐멘터리 모임을 열고 있다. 또 ‘자본론 읽기’ 수업을 들은 수강생들이 계속해서 공부를 같이 해보고 싶다고 해서 세미나 그룹을 만든 적이 있다.

최 : 강의를 개설한 다음에 세미나, 스터디 모임이 활성화되도록 하는 건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난 학기에 세미나실 두 개를 방학 내내 대여했다. 그리고 프린트 출력도 무료 제공해서, 누구든 세미나하고 싶으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다.

곽 : 뒷풀이도 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공개 강의 해주는 선생님들이 끝날 때마다 뒷풀이를 하는데, 덕택에 강의료보다 더 많은 돈을 술값으로 쏘게 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무한 술과 안주를 제공하시는 김누리 교수님께 특히 감사 드린다.

4. 자캠 정신: 해방의 인문학과 자기 교육

리 : 재정이 빵꾸난 적은 없는가? 당장 여기 에어컨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최 : 에어컨은 우리가 청소를 안 해서 필터가 막힌 것 뿐이다(…)

곽 : 2회 때 돈이 살짝 부족하긴 해서, 처음 이야기한 만큼 강의료 지급이 안 됐다. 결국 선생님들께 연락해서, 처음 약속했던 것보다 조금 강의료를 깎아야겠다고 이야기한 슬픈 역사가 있다.

리 : 혹시 따진 선생님들은 없는가?

곽 :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강사료가 있는지도 모르다가, 강의료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 분은 있었지만(…)

최 : 공개강의 때도 마찬가지의 일이 종종 있었다. 끝나고 강의료 드리려고 하니 “강의료 주는 거였어?”라는 반응이 나온 적도…

리 : 신기하게 좋은 선생님들을 잘 섭외하는 것 같다.

최 : 처음부터 ‘해방의 인문학’이라는 슬로건과 어울릴만한 분을 섭외한다. 기본적으로 우리 취지에 공감하는 선생님들이니 흔쾌히 응한다. 해주실 것 같다는 분들에게 섭외 들어가고 보면, 이미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리 : 해방의 인문학! 네이밍 능력이 좀 좋은 것 같다.

곽 : 정확히 우리의 모토는 ‘자기 교육’이다.

시작부터 자기교육운동, 해방의 인문학을 들고 나온 자유인문캠프 (출처 : ‘두산함’은 토끼들의 경보를 들으라?)

 

리 : 자기 교육이라니! 뭔가 주체사상스럽다.

최 : 경기동부의 산실 외대 출신이 그런 소리를 하니 심히 당황스럽다.

곽 : ‘자기 교육’은 요즘 대세인 ‘자기 계발’ 에 대비해서 쓴 용어다. 자기 계발이라는 게 자기가 선택한 가치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어진 가치에 몰입하는 것이지 않은가? 자기가 정말 원하는 삶이 뭐고 사회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뭔지를 되새기는 게 인문학적 사유라 생각한다. 자기 교육이라는 말은 스스로 자기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가치를 찾아가는 그런 지향점을 가진 공부를 의미한다.

리 : 그 밖에 자캠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최 : 나는 자캠을 통해서 여자친구가 생겼다.

곽 : 나도 생겼다.

안 : 나도 생겼다(…)

리 : 역시 다른 뜻이 있었군. -_-; 목적이 뚜렷해야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자기 계발서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최 : 아니다. 우리는 좋은 일 하다 보면 자연히 다 잘 된다는, 기독교적 ‘목적이 이끄는 삶’에 가깝다.

곽 : 생긴 걸 보아하니 당신도 아마 안 생길 인생 같은데, 여기 들어와서 봉사 좀 하기 바란다.

리 : 앞으로 자캠에 바라는 게 있다면?

최 : 20년동안 지속되는 거다. 처음부터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진지전’을 하려고 한 만큼 20년간 지속됐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열정을 착취하는 멋진 자캠으로 남았으면 한다.

곽 : 전에는 10년이라면서 왜 자꾸 추가되냐? -_-…

최 : 10년 할 생각으로 했는데, 벌써 3년이 되니까 너무 짧은 것 같아서… -_-; 처음에는 오지 않을 미래로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성공하고 3년쯤 되니 인지도도 생겼다. 예전에는 선생님들을 섭외하려고 ‘자유인문캠프’라 하면 무슨 캠프, 수련회로 알아들었는데, 요즘은 줄여서 자캠이라고 해도 알아듣는 분들도 있다. 이렇게 3년이 지나고 나니까 벌써 10년이 코앞인데, 20년 정도 해야 하지 않을지 욕심이 생긴다.

리 : 20년 가는 김에 아예 판을 확장해서 타 학교와 연합하는 대형 플랫폼을 만들 생각은 없나?

곽 : 여러 이유로 우리 쪽에서 직접 확대하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다른 학교나 단체에서 자캠과 같은 시도를 하고 싶어하면서도 섵불리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 3년 정도 자캠을 해보니 어떻게 기획하고 홍보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이런 노하우를 매뉴얼화해서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늘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리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최 : 맨날 듣는 질문이 ‘배후가 어디냐?’는 건데, 그런 거 없다.

곽 : 좀 연예인처럼 멋지게 말하자면 “배후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리 : (……)

최 : 아니, 농담이 아니라 이거 확실히 좀 실어라. 학내 훌리건들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어떻게 이런 스케일의 캠프를 벌리고 고퀄리티의 신문 낼 수 있느냐고 하는데, 우리 주변에는 경기동부도, 금속노조도 없다. 그냥 몸으로 다 때운 거다.

곽 : 당장 내고 있는 신문도 바닥부터 인디자인을 공부한 결과다. 홈페이지도 워드프레스 공부해서 나온 거고. 그만큼 맨땅에 헤딩하며 열정적으로 일한 결과물이다.

리 : 이야기 안 하고 버티고 있는 세 분도 한 마디씩 -_-…

김 : 좀 있으면 입대하는데, 군대 갔다 와도 자캠이 있었으면 좋겠다.

리 : 걱정하지 마라. 제대할 날 자체가 오지 않을 테니.

김 : ……

리 : 나머지 분들도…

안 : 자캠이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대학 들어왔을 때 하고싶은 공부할 공간이 없어 실망을 많이 했는데, 자캠처럼 학생들이 직접 만든 공간이 많이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성 : 새내기 때 자캠 수업을 듣고, 본격적으로 기획단에 합류하게 됐다. 이제는 방학이 되면 자캠 스케줄을 먼저 신경 쓸 정도로 빠져들었다. 이런 자기 교육이 10년, 20년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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