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토끼들의 모임 중앙대 자유 인문 캠프 [대학내일]

  • 조성진 학생리포터 jsj_sando@hanmail.net 사진 이상민 학생리포터

     

    2010년 이맘때의 중앙대 교정은 실로 산소가 부족한 잠수함의 내부 같았다. 학교 본부는 학과통폐합과 구조조정에 비판적이던 교지의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새내기 새로 배움터’ 시행을 불허했다. 이에 반대하던 학생들은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리는 대신 위태롭게도 한강대교와 타워크레인에 올라섰고, 캠퍼스에는 검은 상여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때, 한 무리의 토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잠수함 토끼들’이라 명명한 이들은 100년 전 잠수함 속에서 사람들에게 산소 결핍을 경고하던 토끼들처럼 ’어떻게 하면 숨을 쉴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고 공부하자며 ‘자유 인문 캠프’라는 스터디그룹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다소 무모해 보였던 토끼들의 행보는 이제 2년차에 접어들었다. 시도 그 자체가 의미 있던 소모임들이, 결국 시도 그 자체에만 끝나고 마는 상황에서 이들의 롱런은 의외다. 그들을 만나서 이렇게 묻고 싶었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로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로 가느냐.’

     

     

    아주 예민한 토끼들

     

    기획단 이름이 ‘잠수함 토끼들’이에요. 무슨 뜻인가요?

    그 이름 때문에 사실 오해를 많이 사긴 하는데.(웃음) 사실 게오르규의 소설에서 따왔어요. 소설을 보면 수병들이 잠수함에 토기를 태우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들은 토끼를 보고 산소 보충이 필요하다 싶으면 다시 수면으로 나왔다고 해요. 토끼는 조금이라도 산소가 부족해지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물이거든요. 그래서 ‘잠수함 토끼’는 지식인에 대한 은유이기도 한데 사회의 미세한 변화를 먼저 포착하고 계속 관찰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에요. 학교가 밀어붙였던 일련의 구조조정을 보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소설 속의 잠수함 토끼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10여명 남짓한 기획단 멤버는 어떻게 구성된 건지 궁금해요.

    처음 저희를 두고 ‘배후가 누구냐’ 이런 말도 있었는데(웃음) 트위터를 통해서 처음 만났어요. 대학원에 다니던 분이 트위터에 중앙대에서 재미있는 일을 한번 벌이려한다고 글을 쓰셨어요. 거기에 한 명, 두 명 댓글을 달았는데 그냥 ‘오, 재미있겠네요’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앞뒤 설명 없이 ‘언제 어디서 회의를 하니까 오라’는 멘션이 오더라고요. (웃음) 호기심에 다들 그 회의에 나갔다가 지금까지 같이하게 되었죠. 지금 기획단은 12~13명인데 저희는 기획단을 지원받고 선발하는 공개 모집 형태가 아니에요. 프로그램 진행하다가, 뒤풀이에서 술먹다보니까 다음 날 나와 있고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네요.(웃음) 5월에 새내기교양학교를 하게 되면 신입부원이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유 인문 캠프’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해요.

    한마디로 정리하는 게 어렵지만 ‘자유 인문 캠프’는 대학 안에서 교육 운동을 하는 단체예요. 일련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통해 회계학이 모든 전공의 필수과목으로 지정되고 동시에 학내에서 인문학은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학교에서는 구조조정이 ‘취업에 도움’이 되고 ‘학교 이미지를 제고’하며 결국 ‘너희를 위하는 것’이라 주장했죠. 그러나 저희는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 학교가 말하는 ‘너희’에 포함되지 않는 학생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어요.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지만 혼자 책 읽고 공부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학생들을 밖으로 끌어내 만나보고 싶었죠. 그래서 저희는 여름, 겨울방학 연속 강좌를 여러 개 진행하고요. 학기 중 봄에는 새내기교양학교, 공개강연, 영화상영회, 청년운동 집담회 등 그때그때 가능한 프로그램을 유동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누구든 토끼를 건드리면 X되는 거예요

    아주 X되는 거야

     

    아까 강연을 봤어요. 밤이 늦었는데도 강의실에 사람들이 가득 차 놀랐어요.

    ‘자유 인문 캠프’에서 주최하는 올해 첫 공개 강연이에요. 공개 강연은 따로 수강 신청을 받지 않고요, 무료로 진행됩니다. 오늘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저도 정말 놀랐어요.(웃음) 오늘 강연은 ‘페스티벌 봄’이라는 단체와 저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데요, 이분들은 인문학적 요소가 들어있는 실험적 예술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요층이 저희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공동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어요. 예술과 인문학이 만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고, 사람들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거든요.

     

    2년 전으로 돌아가보면, 첫 기획 강연부터 성공적이었지요?

    당시 학교와 학생들 간의 투쟁국면이 꽤 길었고 결국은 학교의 구조 조정안이 거의 관철됐어요. 교내에 침묵만 남은 상태였어요.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죠. 그러니 처음에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죠. 학내에서 그간 강연행사가 없었던 게 아닌데 참여가 매우 저조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강연 사업을 진행하려니 암담했어요. 하지만 학내에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과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검증되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무식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강연 장소도 무작정 100인 강의실을 택했어요. 홍보 수단이 마땅찮아서 매일 포스터 붙이고 트위터에서 유명인한테 RT해달라고 빌고 그랬는데.(웃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기획 기간이 길었던 점이에요. 여름부터 가을 끝날 때 까지 우리 기획에서 뭐가 문제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고민 끝에 나와서 그런지 지금 봐도 그때 기획은 정말 괜찮았던 것 같아요. ‘아주 근본적인 세 가지 물음’이라는 주제로 3회 연속 공개 강연을 했는데 100인 강의실이 꽉 들어찼어요. ‘이거 될까?’‘10명 정도 와서 시작과 동시에 망하는 거 아닐까?’ 매일매일 어찌나 똥줄이 타던지. (웃음) 사실 첫 공개강연의 힘을 받아서 자유 인문 캠프가 지금까지 굴러온 겁니다.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어요.

     

    최근에도 의미있는 성과들이 있었다고요?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 뿌듯해요. 저희가 원래는 강의를 7~8개, 많이 할 때는 9개 했는데 최근 겨울학기에는 14개를 개설했어요. 엄청난 모험이었죠. 강좌를 들으러 오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다고 할 때 강좌 수가 늘어나면 강좌 당 수강생이 줄고 그럼 강사료를 드려야하는데 손익분기점 맞추기가 어려워지니까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기획이었어요. 그런데 다들 합심해서 한번 해보자며 밀고 나갔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한 강좌당 수강생 수가 그대로 유지되서 역대 가장 많은 수강생들이 온 거에요. ‘아 이거 신기하다!’ ‘하면 되는구나!’정말 뿌듯했어요.

     

    캠프를 운영해오면서 외부로부터의 압력은 없었나요?

    저희는 노골적이고 선명하게 메시지를 내세우지는 않아요. 저희도 사람인지라 당시 학생들이 퇴학당하고, 무기정학 당하고,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하는 공포 분위기 속에서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소위 말하는 운동권의 길을 좇는 것만이 왕도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선택한 나름의 기조 덕분에 외연을 넓힐 수 있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좌파적인 분들에서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힙스터들까지도 저희와 함께할 수 있거든요. 학교 측에서 저희를 못마땅해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어요. 학생들이 모여서 그분들이 그렇게 하길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는데 “공부 하지마!” 이럴 수 있을까요.(웃음)

     

    작고 민첩하고 기발하게 깡충깡충

     

    수강생들과 피드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뿔뿔이 흩어진다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논의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 시작한 거니까요. 그래서 뒤풀이를 집착에 가깝게 진행합니다. 공식적으로 피드백 받아서 수치화하거나 그렇지는 않지만 뒤풀이를 통해 자유 인문 캠프에 왜 왔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 취지에 공감을 했는지, 강연은 어땠는지 등 그런 것들을 묻고, 듣고, 답하면서 기획에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어요. 강사분들이 적극적으로 수강생들에게 뒤풀이를 권하는 편이라 호응도가 정말 좋은 편이에요. 단점이 하나 있는데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엔 기획단원들 얼굴이 똥색이 돼요. 술을 계속 마시니까.(웃음) 저희는 소주, 맥주, 막걸리, 고량주 가리지를 않습니다. 단원 한분은 빈혈이 와서 정기적으로 철분 약을 먹고 있어요ㅠㅠ. (일동 폭소)

     

    인문캠프의 초창기 멤버들은 3, 4학년이니까 졸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현실적인 고민이 있을 법 한데요.

    웃프네요.(웃음) 저희 기본적으로 일이 닥치지 않으면 미리 고민하지 않는 편이에요. 지금은 일단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때가되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주의죠.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졸업에 대한 중압감이 심하지 않아요. 속편한 소리로 들릴 것 같은데 삶은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순간들이 모이고 모이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삶의 매 순간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요. 저희가 만나서 자유 인문 캠프를 꾸려온 것처럼 우연한 사건이 그 사람 삶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나중에 어쩌다 보니 또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너무 낙천적인가요?

     

    앞으로 구상 중인 계획이라든지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저희는 중앙에서 큰 조직이 관할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특정 시기에 구체적인 장소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을 만나는, 작고 민첩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시적인 담론에 대해서는 많이들 이야기하고 있는데 실제로 대학 안에서 그 대학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그 담론을 확장시켜나갈 노력들은 왜 없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자유 인문 캠프가 시작된 것이거든요. 저희와 비슷한 취지에서 각 지역, 각 대학에서 활동하는 학생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연대를 강화하고 싶어요. 그러면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는 기획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요? 상상만 해도 즐거워요.

     

     

     

    http://www.naeilshot.co.kr/Articles/RecentView.aspx?p=3KBPc0gc7lp5ecshqnmYvN2Ksau1mAMKhapwZIONJRw%3D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