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만드는 ‘성찰하는 대학’ [CC 코리아]

원문링크 http://www.bloter.net/archives/96104
대학생들이 만드는 ‘성찰하는 대학’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이하 CC코리아)는 저작권의 올바른 가치 확보 및 문화와 지식 공유의 균형점을 위한 오픈 라이선스 CCL의 보급 활동과 함께, 공유와 개방의 문화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오픈 커뮤니티이다. IT 개발자, 법조인, 예술가, 교수, 언론인 등 각계각층의 자원활동가들이 각자 영역에서 CC의 가치를 공유하고자 활동 중이다. 그 가운데서도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인 ‘CC 유스’는 해마다 새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 실행에 옮긴다.

 

올해 CC 유스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유와 개방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이어갈 예정이다. ‘대학생, 커뮤니티, 창작, 공유, 자발성, 다양성, CC’라는 7개 열쇳말을 중심으로 이와 관련된 사람이나 조직을 찾아간다. 프로젝트 서문은 자유인문캠프가 연다.

 

자유인문캠프는 2010년 여름 중앙대의 기업화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문제 의식을 공유한 일군의 대학생들이 트위터로 만나 결성한 커뮤니티다. ‘자기계발담론’에 저항하는 ‘자기-교육’을 모토로 학생들이 직접 방학때마다 인문학 강좌를 기획·개설하고 있다. 2012년 2월 현재 4번째 자유인문캠프 ‘사유, 감각, 상상!’에 14개 강연이 개설돼 400여명의 학생이 수강 중이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된 커뮤니티는 많다. 하지만 동력을 잃지 않고 분기마다 지속적으로 행동해나가는 커뮤니티는 드물다. 1년 동안 4번의 강좌와 행사를 이끌어오며 누적 수강생이 2천명이 넘을 만큼 성공적으로 캠프를 꾸려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흑석동 중앙대학교 서라벌홀 8층에 위치한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자유인문캠프 기획단을 만났다.

 

“2010년 여름 중앙대의 기업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시위, 징계. 일련의 과정이 지나고 소강상태에서 학교 분위기는 무기력했습니다. 저항할 의지를 잃거나 무관심해진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와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먼저 생긴 한예종 자유예술캠프의 모델을 따랐습니다.” 중앙대에서 문화연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철웅씨는 처음 자유인문캠프를 트위터에서 제안한 주인공이다. 그가 던진 트윗에 같은 생각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알음알음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곽동건씨는 그 트윗을 보고 기획단에 참여한 초기 멤버 6명 중 한 명이다. “방학 즈음에 트위터에 ‘중앙대에서 재밌는 일을 꾸며보려 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연락 달라’라는 글이 올라왔어요. 별뜻없이 ‘와 재밌겠네요’ 라고 멘션을 보냈더니 회의 시간과 장소가 공지된 답글이 온 거예요. 딱히 하는 일도 없고 해서 첫 회의에 참석하고, 그렇게 기획단을 하게 되었어요.” 그는 신입생 시절부터 정당 활동을 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복학 후 변해버린 학교의 모습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던 시기에 우연찮게 온라인을 통해 돌파구를 얻은 셈이다.

“3개월 동안 어떤 목표가 있어서 ‘언제까지 기획을 하자’ 그렇게 회의를 하지 않았어요. 만나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을 할까 단순히 이야기만 나누었어요. 그 사이에 점차 자유인문캠프의 취지와 방향이 결정됐고, 제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되고 있음을 느꼈죠.”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동안 가을을 기다리며, 기획단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적 배움을 알리고, 주변의 좋은 교수님들께 학교 수업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갖자는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강사 섭외의 어려움도, 학교 당국의 간접적인 견제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2010년 가을, ‘자기-교육 운동, 해방의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자유인문캠프가 열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세 번에 걸친 공개 강연에는 100명 규모의 강의실이 꽉 찼고, 자유인문캠프의 공식 트위터에는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팔로우를 신청했다. 성공적인 행사의 주최에 의혹의 시선조차 따를 정도였다. 배후설도 제기됐다. 정당이나 사회단체가 행사를 돕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규모라는 이야기까지 돌았으니까.

 

당연히 배후가 있을 리가 없다. 굳이 배후가 있다면 파편화돼 있던 학생들을 연결해준 트위터가 아닐까. 처음에도 지금도, 기획단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보통 10명 안팎의 인원인데, 새내기부터 대학원생까지, 중앙대 학생에서부터 다른 대학의 학생까지, 예술 전공에서 인문 전공까지 다양한 학생들이 저마다 목표를 가지고 기획단에 참여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났는데, 의견 충돌이나 특별한 갈등은 없었을까. “없었어요. 이 일이 시즌별로 진행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합의가 돼야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7~8시간 동안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다가, 수시로 그룹채팅을 해요. 편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의견이 조정이 되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갈등이 없을 수 밖에 없는 게, 다들 처음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정치외교학과를 전공 중인 김규백씨가 대답했다. 그는 학내에서 정치활동을 하던 중 자유인문캠프를 알게 됐고, 두 번째 자유인문캠프부터 기획단에 참여했다.

 

기획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모두들 대학의 기업화와 대학생의 탈정치화에 대해서 투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소위 ‘운동권’ 학생들로만 이뤄진 건 아니냐는 질문에 기획단 멤버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정치적으로 구체적이고 선명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두루뭉술하게 우리 취지에 동의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할 수도 없고요. 특히 자유인문캠프를 꾸려나가는데 모두가 높은 수준으로 단일한 문제의식을 공유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예술대학 사진학과의 11학번 새내기인 성세희씨가 바로 정치적 목적보다는 학문적 목적으로 기획단에 참여하게 된 사례다. “대학에 오면서 전공 이외에도 교양 수업을 통해 사회문제나 현실에 대해서 배워보고 싶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 수업들이 그것을 충족을 시켜주지 못했어요. 그러던 중 계절학기 때 그나마 만족스러운 수업을 들었어요. 그 교수님께 대학에서 느끼는 공부의 소외감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자유인문캠프를 소개해주셨어요.”

 

실제로 성세희씨는 자유인문캠프 경험이 정규 수업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큰 성과는, 그간 중앙대의 기업식 대학 운영과 취업에 중점을 둔 교육 과정에 대해 느껴왔던 불만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한다.

 

“저는 자유인문캠프에서 소식지 ‘잠망경’을 만들 때가 제일 좋았어요.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어요. ‘잠망경’ 소식지가 배포되자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학교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어요. 그간 조용했던 사람들이 비판의 글을 올리는 시도들이 있었거든요.” 성세희씨는 지난 1년간 자유인문캠프가 성공적이었던 이유 또한 그 지점에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식을 가졌으나 쉽사리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유인문캠프가 하나의 소통구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 김규백씨는 자유인문캠프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을 들었다. “돈에 초연한 게 잘 될 수 있었던 요인이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수강생도 증가하고, 이름도 알려지면 수강료를 올릴 수도 있는데, 어쨌든 수강생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요. 이득을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학생들이 많이 생각하게 돕는 게 목적이니까요. 수익에 집착하면 쉽지 않거든요. 수익이 나도 다음 활동을 위해 사용하고요.”

 

자유인문캠프는 대학 외부에서 진행되는 여러 인문학 강좌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강료가 책정돼 있다. 그럼에도 학교의 유휴자원을 이용해서 강의실 대여료가 들지 않기 때문에, 강사들에게도 넉넉하게 강사료를 지급할 수 있다고 한다. 적자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활동을 꾸려나갈 수 있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망하지 않고 1년간 해왔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간 회의를 하면서 ‘이거 해보면 어떨까’ ‘재밌겠다’ 이런 것들이 계속 쌓여 있었어요. 그렇게 시도해보려고 했던 아이템들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성공이죠.” 곽동건씨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기획단 내부에서 그간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 둘 이뤄가는 과정이 더 큰 성과라고 말했다. 여기서 자유인문캠프에 대해 그간 가지고 있던 의문, ‘자발성’에 대한 실마리가 엿보인다. 10명 남짓의 소규모 기획단이 방학마다 몇백명 규모의 강좌를 꾸리고, 소식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학기 중에 영화 상영회와 새내기 교양학교 등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은 이 활동이 그들이 진정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강사를 섭외할 때 전화 정도는 나눠서 하지만, 기능적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때그때 서로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조정하며 일을 나눠서 해요. 그래서 모두가 리더인 것처럼 일을 하죠. 바빠지면 서로가 조절해서 일을 더 하거나 기획단 멤버를 새로 뽑아요.” “오히려 강요가 없어서 더 하게 되는 면이 있어요. 권위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기획단 내부에서 모두가 똑같은 입장에서 똑같은 발언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요인 인 것 같아요.” 최철웅씨는 오히려 직책을 나눠가지지 않고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성세희씨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자발성을 이끌어낸다고 말했다. “본인이 할 수 있을 때, 여유가 있을 때, 부담이 없는 선에서 하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곽동건씨가 덧붙였다.

 

자유인문캠프의 설립 목적 중 하나는 학내에 학교 문제에 대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어디까지 왔을까. “다른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조직들과 교류를 계속 하고 있어요. 돌곶이 포럼과 공동 생활전선같은 조직들과 같이 청년운동에 대한 집담회 행사도 했었고요. 학내에서도 연대해서 할 수 있는 단위들이 늘어났지요. 인문대 사회대 예술대 학생회라든지 중앙문화와 같은 교내 진보 언론들과 안면을 트고 예전에 비해 더 많은 행동을 함께 하고 있어요. 기획단도 자연스레 멤버 교체가 일어나면서 서로간의 네트워크가 발생하고 있고, 강연을 하러 오시는 선생님들과의 네트워크도 활발해요.

 

마냥 만족스럽기만 한 건 아니다. “아쉬운 점은 수강생들간의 네트워크예요. 강좌만 듣고 끝내는 게 아니라,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끼리 더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네요. 그래서 수업 후 뒤풀이라도 많이 하려고요.”

 

학교 바깥에서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제2, 제3의 자유인문캠프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를 위해 자유인문캠프가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 노하우가 담긴 설명서나 작은책자를 만들 계획도 있다고 한다. “저희도 처음 강좌 기획할 때 했던 수고에 비해서 지금은 반의 반도 덜 드는 것 같아요. 그때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더 큰 강좌를 만들고 더 큰 일들을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좋은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들이 그리는 자유인문캠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 언젠가는 자유인문캠프를 떠나야 할 시기가 찾아올 테다. 처음의 목적의식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참여하는 강도는 달라지더라도 끝까지 갈 것 같아요. 지금처럼 열심히 못해도 조금씩이라도 도우면 유지되지 않을까요? 저희는 자유인문캠프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최소한 10년은 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대학이 어떤 공간인가에 대한 담론이 가장 치열했던 2010년과 2011년을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겁게 지속하면서 통과해 왔다. 지금의 자발성과 커뮤니티가 유지만 된다면, 영원한 자유인문캠프도 꿈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들은 자연스레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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