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식

■ 《일일 역사기행》 서울 북촌 탐방 [장규식]

[강사 소개]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근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와 미국 코넬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교수 등을 거쳤고, 현재 한국사연구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기독교역사학회, 도시사학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지성사와 도시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일제하 한국기독교민족주의연구>(2001),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2004), <민중과 함께 한 조선의 간디 조만식>(2007), <서울 독립운동의 역사현장>(2008), <1920년대 학생운동>(2009) 등이 있다.

[답사 소개]

서울의 북촌(北村)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백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 남쪽 기슭, 바로 지금의 안국역 일대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서울 도성안 북쪽에 터를 잡아 북촌이라 불리었던 이 마을은 남향하여 양지바르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 또한 맑아 사람이 살기 좋은 명당인데다, 궁궐 관청 교육기관과 가까운 편리함도 있어 예로부터 집권 관료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이었다. 때문에 조선시기의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이 ‘북촌양반’들의 동네를 무대로 해서 일어났다. 개항 전후만 해도 대원군 개혁정치의 산실이었던 운현궁이 이곳에 있었고, 갑신정변의 거사 공간 또한 그 반경 안에 있었다. 이후 갑오개혁의 신분제 폐지 조치와 더불어 승려들의 도성 출입이 허용되고, 안국동에 양반들의 개신교회로 안동교회가 설립되고, 민중종교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의 중앙총부가 송현동 지금의 덕성여중 자리에 자리를 잡는 한편으로, 한성중학교 휘문학교 기호학교(중앙학교) 같은 신식학교들이 들어서면서 북촌의 공간적 성격은 다소 변화를 보인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거점으로서 북촌이 차지하는 지위와 비중에는 변함이 없었다. 특히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여 청계천을 경계로 이북지역에는 조선인이, 이남지역에는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게 되면서, 북촌은 서울을 가로지르는 조선인의 거리 종로의 배후지로서 3.1운동을 비롯한 각종 민족운동의 진원지 노릇을 하였다. 더불어 해방직후 치안유지와 건국준비를 위해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또한 북촌을 그 텃밭으로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북촌은 개항전후 이래의 행정(行程)만 놓고 볼 때도 한국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호흡을 같이 했던 역사의 현장이자 문화공간이었던 셈이다.

 

[답사 일정]

 

일    시 : 2012년 2월 15일(수) 오후 1:30 ~ 5:30

수강정원 : 30명

수강료 : 10,000원

코  스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집결> 운현궁(수직사 노안당 노락당 이로당 유물전시관) – 천도교 중앙총부(중앙종리원 터․수운회관․중앙대교당) – 민익두가 – 경인미술관(박영효 집터) – 현대사옥(경우궁 계동궁, 관상감, 휘문학교 자리) – 한학수 집(산내리 한정식)- 건준 창립본부 – 여운형 집(안동손칼국수) – 김성수 집 – 한용운 거처 – 중앙학교 숙직실 터 – 손병희 집터 – 헌법재판소(박규수 집터, 홍영식 집터= 제중원터, 최린 이상재 집터, 경기여고)